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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공산성을 산책하게 된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 가까히 있는 공산성(公山城)을 찾게 된다 ( 2022.9.12 )

공산성은 2015년에 오고는 다시 찾게 된다

이곳은 백제의 옛 수도였기에 백제의 문화,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곳이다

무엇보다 금강이 공산성을 휘감고 흐르기에 그 풍광 역시 빼어난곳이기도 하다 

먼저 금서루로 향하게 된다 

금서루에 오르는 길에는 비석이 줄을 이어 서 있었다 

당시 관찰사나 현감,목사등의 송덕비이다 

 

 

공산성에 대한 안내도이다 

성 둘레를 한바퀴 돌아 볼 생각이다 

 

 

공산성(公山城)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벽이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공주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때가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였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졌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 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이후에 석성으로 개축 되었다

성의 총길이는 2,660m이고 동서남북에 문이 있는데 남문은 진남루, 북문은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1993년에 동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가 복원 되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감영을 비롯해 백제시대 임류각지,

연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 그리고 조선시대 유적인 쌍수정, 영은사, 쌍수정사적비, 만하루, 명국삼장비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 안내문 )

 

 

금서루를 들어선다 

금서루 뒷 모습도 웅장하고 견고하게 보인다 

 

금서루(錦西樓)

금서루는 4곳의 성문중 서쪽에 설치한 문루였으나 유지(遺址)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 후로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 1993년도에 복원 되었다

공산지(公山誌)에 의하면 문루의 규모는 동문과 같이 정면3칸, 측면 1칸의 중층건물이었다고 한다

 

 

금서루에 올라 성곽따라 오른다 

지나온 금서루를 바라본다 

높은곳에는 공산정이 보인다

한바퀴 돌다보면 공산정에 이르게 될것이다 

 

 

공산성 성벽의 동서남북에 배치한 깃발은 송산리고분군 6호분

벽화에 있는 사신도를 재현한것이다 

깃발의 테두리며 깃발의 그림이 틀려 방향이 어떤지를 

깃발로 쉽게 구분이 된다 

금서루는 서쪽임을 알수 있다 

 

 

호젓한 성벽을 따라 걷게 된다

아직도 가을이라기에는 이르다 

녹음이 울창한 성벽길을 마냥 걷게 된다 

이끼가 많이 낀것을 보면 오랜 세월과 이곳이 공해가 없는 청정지역임을

짐작케 한다 

 

 

 

 

 

 

백색의 테두리 깃발은 이제 적색이며 백호가 아닌 주작의 깃발이다

 이곳은 남쪽임을 알수 있다 

 

 

왕궁지는 가림막을 쳐 두었다

추정왕궁지로 탐사를 하고는 복원을 할 모양이다

그 뒤를 가서 쌍수정(雙樹亭)을 둘려본다 

 

쌍수정(雙樹亭, 문화재자료 제49호)

쌍수정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일시 파천(播遷)했을적 5박6일간 머물렀던 곳이다

쌍수에 기대어 왕도를 걱정하던 인조가 平定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쌍수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令을 내려섰다는 유래가 있다

특징이 마루 바닥이 없는것이다 

 

 

쌍수정사적비(雙樹亭 史蹟碑, 도지정유형문화재 제35호)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 6일간의 내용을 새긴 비문이다

비문은 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흥이 지은것으로 글씨는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이 섰다

 

 

쌍수정을 내려와 진남루에 이르게 된다 

 

진남루(鎭南樓, 문화재자료 제48호)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토성 이었던 공산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이었다

 

진남루는 공산성의 주문이라한다

그 모습이 당당하다 

 

 

 

 

 

 

탐방안내도가 전자 스크린으로 해 두었다 

진남루에서 영동루, 임류각, 광복루가는 길은 공사로 인해 막아 두어

우회해서 가게 된다 

 

 

 

 

 

 

 

 

 

금강이 한눈에 들어 온다 

파로나마로 담아 본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금강은 영동, 옥천, 세종을 거쳐 이곳 공주로 해서 부여로 흐를것이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을 보면서 한동안 쉬게 된다 

강 건너편은 10월1일부터 개최되는 백제문화제 장소인

"금강신관공원"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가빠른 내리막이다 

목계단이지만 미끄러웠다 

오르내리는 탐방객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하면서도 공산성을 보게 될것이다 

 

 

만하루와 연지가 눈 아래 보인다

나는 이곳이 공산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여겨진다 

 

연지와 만하루(蓮池및 挽河樓, 연지 - 충남도기념물 제42호)

연지는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중 하나이다

단(段)의 형태로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고

깊이는 약9m이다   연못과 금강사이에 만하루라는 정자를 세웠다

(안내문)

 

여기서 보면 금강이 바로 옆으로 흐른다 

 

 

영은사가 만하루 맞은 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입구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있고 

여행객에게 목을 축이라고 샘물이 맑게 흐르고 있었다 

 

영은사 (靈隱寺, 대웅전- 도지정유형문화재 제51호) 

영은사는 세조4년(1458)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광해군 8년(1616)에 승장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은행나무 둘레에는 행복을 비는 글귀가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만하루에 이르게 된다

금강을 좀 더 가까히 보며 그 옆에 있는 연지는

마치 탑을 거꾸로 세운듯한 석축을 쌓아 그곳에 물을 저장했다는것이다 

 

 

이제 만하루와 연지를 떠나면서 신비로울 정도로 고귀한 연지를 

뒤 돌아 본다 

 

 

전에 올적엔 보지못한 

얼음창고와 잠종냉장고 역할을 한 곳이 보인다 

다시 말해 석빙고인 셈이다

옛 성현들의 지혜로움을 짐작케 한다 

 

 

공산성의 북문에 해당하는 공북루에 이른다 

지금은 복원 공사하느라 가름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 사진은 전에 왔을적에것을 소환해 봄 )

 

 

공북루에서 다시 오르게 된다 

공산성은 외곽을 둘려보면 오르내림에 많아 힘드는 성곽둘레길이다 ㅎㅎ

여기서 보는 금강이며 공주 시가지의 풍경 또한 아름답다 

 

 

공북루를 지나 마지막으로 금강을 내려다 보면서 오르니

공산정(公山亭)에 이르게 된다

정자에 올라 보니 공산성과 공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공산성이였다

이제 처음 왔던 금서루로 내려가게 된다

 

 

 

 

 

 

원점회귀하게 된다

금서루에 이르게 된다 

아름다운 공산성이다 

지난번보다는 공사로 인해 몇 곳을 못 본게 아쉽지만 ......

 

 

 

 

 

 

 

 

 

 

 

 

 

 

오랜만에 본 공산성이다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공산성을 산책하면서

10월1일부터 열흘간 제68회 백제문화제를 이번에는 놓치지 않고 보리라 맘 먹게 된다

공산성 앞 노타리에는 예전에 없던 무령왕 동상이 잘 세워져 있었다 

무령왕동상 회전식이 거행한다는데 못 본것이 아쉽게 되었다 

웅진성(옛 공산성이름) 수문병 근무교대식이 

11월까지 매주 주말에 열린다고 한다 

다시 공주를 찾아 여러곳을 탐방 하리라 맘 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