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제일가람 ( 湖西第一伽藍 ) 법주사를 탐방하게 된다
애당초 계획은 속리산을 산행 할려고 했으나
일이 있어 못가고 늦게사
아름다운 사찰 법주사나 탐방하리라 맘 먹게 된다 ( 2014. 8. 23 )
법주사는 여러번 다녀 온 사찰이지만 언제나 다시 가고픈 곳이다
국보가 3점이나 있고 보물이 12점이나 있다고 하니 문화의 보고인셈이다
오대산의 월정사나 구례 화엄사도
3보사찰은 아니지만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즐겨 찾는 사찰이다
시간이 있어 속리산을 산행 한 후에 법주사를 들리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울 텐데
그러질 못한것이 못내 아쉬움을 가지면서 법주사로 향하게 된다
법주사는 대한 불교조계종제5교구 본사이다 ( 사적503호 )
신라진흥왕14년 (553)에 義信이 창건하였고 그 뒤 혜공왕12년(776)에 眞表가 중창하였다
임진왜란시 대부분 소실한것을 인조 2년 (1624)에 벽암이 대웅전등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 문화재청 )
법주사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이다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에 못 이겨 한쪽편의 가지가
많이 훼손되어 안타깝게 보인다
" 조선조 세조 임금이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오던중 소나무 가지가 늘어져
어가가 못 가게 되었는데 갑짜기 가지가 위로 올라 가서 어가는 무사히 가게되니
세조는 가상히 여겨 소나무에게 정이품의 벼슬을 하사 했다는것이다
이래서 이 소나무를 <정이품송 > 이라 했다 "
방향을 다른곳에서 보니 너무도 아름다운 소나무였다
과연 정이품송은 위용을 갖추고 품위가 있어 보이는구나 싶었다
정이품송을 본 후에 조금 오르니 우측에 연밭이 있었다
애마를 잠시 세우고는 연밭에 들려본다
많은 이들이 연꽃을 보며 즐거워한다
법주사로 가는 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한편은 냇물이 흐르고 다른편에는 울창한 숲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금강송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드뎌 호서제일가람이라는 현판이 있는
일주문으로 들어서게 된다
호서제일가람이라 ~~~
법주사는 호서지방에 제일가는 사찰이란 얘기다
부도전 ( 浮屠殿 ) 이다
법주사 입구 우측에 있는 부도전이다
금강문을 들어서고 천왕문도 들어선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은 금동미륵대불이였다
천왕문을 들어서니 익히 아는 팔상전이 눈 앞에 서 있었다
보은법주사팔상전 ( 報恩法住寺捌相殿, 국보제55호 )
신라 진흥왕 14년(553년)에 처음 건립 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때에
불타 버려 조선인조4년(1626년)에 다시 지웠는데 조선의 승병장인 사명대사가 주관 하였다
이후 1968년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은 5층 목조탑 건축으로 한국 목조탑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로
내부에 석가 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 있어 팔상전이라 한다
1층과 2층은 정면 5칸 측면 5칸, 3층과 4층은 정면,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향으로 되어있다
처마를 장식하는 공포양식은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로 짠 주심포식이고
5층은 기둥사이에 공포를 짜 올린 다포식이다 높이가 22.7m이다
( 문화재청 )
팔상전의 건축물을 자세히 보게 된다
아름답고 섬세했다 내부는 사진을 못 담는다고 해서 보기만 했다
금동미륵대불
동양 최대의 미륵불 입상이다 ( 높이 33m )
웅장한 미륵대불을 바라다 본다
보은법주사대웅전( 報恩法住寺大雄殿 , 보물 제915호 )
신라진흥왕 14년(553)에 의신조사가 건립하여 혜공왕12년(776) 진표율사가
고쳐 지웠으나 임진왜란시 불타 버린후 조선 인조2년(1624)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면적이 402.80m2, 높이가 약19m에 이르는 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중 하나로 꼽힌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1360호 <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 > 이 안치 되어 있다
( 문화재청 )
대웅전 앞에는 커다란 보리수 두 그루가 있었다
보은법주사쌍사자석등 ( 報恩法住寺雙獅子石燈 , 국보제5호 )
신라의 석등중 뛰어난 작품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19년(720) 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3.3m로 널따란 8각의 바윗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 상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으니 다른
석등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것이 특징이다 ( 문화재청 )
원통보전 , 보물 제916호 조선 중기의 불전
보은법주사석조희견보살입상 ( 報恩法住寺石造喜見菩薩立像, 보물제1417호 )
전체 높이 213cm이고 제작은 쌍사자석등과 동일 시기인 720년 전후 작품으로 추정된다
보은법주사사천왕석등 ( 보물 제15호 )
신라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조각수법으로 보아
혜공왕때에 진표율사가 법주사를 다시 고쳐 지을때의 작품으로 추정
된다 높이가 3.9m이다 ( 문화재청 )
석등에는 사천왕이 조각 되어 있었다
보은법주사세존사리탑 ( 충북유형문화재 제16호 )
능인전 뒷 뜰에 있었다
보은법주사마애여래의좌상 (報恩法住寺磨崖如來倚坐像 , 보물제216호 )
높이 6m로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 (倚像)으로 옆에 조각된 지상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이다
법주사 앞은 울창한 숲 사이로 냇물이 흐른다
보은법주사석련지 (報恩法住寺石蓮池 , 국보제64호 )
신라 성덕왕19년(720년경)에 조성 된것으로 추정하며 높이 1.95m, 둘레 6.65m에
이르는 희귀한 석조 조형물이다 8각의 받침석 위에 3단의 굄과 한층의 복련대를
더하고 그 위에 구름 무늬로 장식된 간석을 놓아 거대한 석련지를 떠 받쳐
마치 연꽃이 둥둥 뜬 듯한 모습을 표현한 걸작품이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은 기발한 착상에 의한것이며 특히 동지주(난간의 짧은 기둥)의
형태가 불국사 다보탑의 석난간 동지주와 유사하다
( 문화재청 )
보은법주사당간지주 - 아래 사진으로 설명 가름함
이제 법주사 경내를 두루두루 탐방을 하고는 나서게 된다
여러번 온 사찰이지만 비로소 법주사는 국보급3점과 보물급 12점이 있는 명찰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우리 조상의 슬기로움과 예술적 가치를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충분히 알수 있었고 나라의 병고만 없어 잘 보존이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도 생각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백일홍이 피어 사찰의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보여 줄터인데 이곳은 배롱나무가 없었다
하긴 배롱나무는 기후가 온화해야 하는데 .....
국화향으로 백일홍을 못 본것에 대신하는 위안을 갖게 된다
다시 호서제일가람이라는 일주문을 나서게 된다
주차장으로 오는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직도 더위가 남아 있어 계곡에는 마지막 피서를 즐기는 이들로
즐거움의 소리가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들려 온다
옥천으로 오면서 시간이 없어 속리산 산행을 못한것에 미련은 갔지만
그래도 법주사를 잘 둘려본것에 만족을 하게 된다
언 제 : 2014. 8. 23
어디에 : 보은 법주사
누구랑 : 나 홀로
날 씨 : 흐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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