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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서울·경기도

윤슬이 오른 한국의 名山들(37) - 남한산성

 

 

 

 

 

 

봄을 느끼면서 남한산성을 탐방하게 된다

 

 

이번주에는 가까운 남한산성을 가게 된다

산우님도, 옆지기도 없이 나 홀로 가게 된다

남한산성은 오래전부터 많이 다녔지만 그냥 산행만을 했고 주변 경관만 보았을 따름이였지

 산성에 대한 역사적인 유래와 산성의 기능등은 자세히 몰랐기에 오늘은 산행이라기보다

남한산성에 대한 탐방을 제대로 해 보자는데 그 목적을 두고 가게 된다

혼자이기에 가능하다  동행인이 있으면 자세히 보지 못하고 오로지 산행에만 열중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으로 시작하여 동문(좌익문)에 이르게 된다

등산객이나 나 처럼 역사 탐방으로 온 많은 관광객이 줄을 이어 가게 된다

나도  동문부터 들려 산성 성곽을 따라 오르게 된다      am 9:40

 

날씨는 더할나위없이 포근하고 구름 한점없는 맑은 날씨였다

단지 고질적인 스모그 현상이 좀 있어 옥에 티라고나 할까 ?

그러나 산행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였다

 

 

 

 

 

 

 

 

 

▲  좌익문 ( 左翼門 ,  동문 )

 

 

남 한 산 성 ( 南漢山城 ) -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곳이다                       ...........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였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 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12년 (672)에 한산주에     .

쌓은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엔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 곳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은 주로 병자호란으로 기록 되는곳이다 조선 인조14년(1696)에 청나라가.......

침략 해오자 왕은 이곳으로 피신하여 항전 하였으나 왕자들이 피신 해 있던 강화도가 함락되고 패색이 짙어지자...

세자와 함께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 나가 치욕적인 항복을 한 곳이다    ....                                               

그러나 정작 남한산성은 패배를 알지 못하는 곳이다  성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어 적의 접근이 어렵고 ................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여 넓은 경작지와 물을 갖춘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병자호란시에 ...................

수적 열세에 불구하고 청군에 함략 당하지 않고 47일이나 항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하나의 폐곡선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졌다.....................

< 안내문 >

 

남한산성에 대한 자세한 안내문을 읽고는 좌익문을 지나 가파른 성곽길을 오르게 된다

성곽은 잘 복원되어 건너편에도 구불구불하게 성곽이 마치 지렁이처럼 곡선을 이루며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 좌익문의 측면 모습이다

 

 

 

 

 

 

 

▲ 송암정지 ( 松岩亭址 )

 

송암정은 우리 말의 " 솔바위정자 " 라는 뜻이나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쉬고 있었다 그 중 술에 취한 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불법을 설파하였다  이때  무리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 사람이 갑짜기 이 절벽으로.  ...

뛰어내려 자결 하였는데 그 후 달 밝은 밤에는 이곳에서 노래 소리와 통곡 소리가 들려 왔다고 한다 .....................

이 바위에 서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 대부 " 벼슬을 내려 " 대부송 " 이라고 부르는 소나무이다

< 안내문 >

 

송암정지를 지나 성곽따라 오르니 장경사 사찰에 이르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니 전나무가 나열 하고 있었다

 

 

 

멀리 수어장대가 보이고 그 아래 행궁도 보인다

 

 

 

 

▲ 장 경 사 ( 長慶寺 )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고쳐 쌓을때 승려 벽암각성을 도총섭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들을 번갈아 징집하여

성을 쌓게 하였다  축성후에도 승군을 주둔 시켰는데 이들의 숙식을 위하여 인조16년(1638)에 건립 한 절이다..

1894년 갑오경장으로 승군제도가 없어질때까지 270명이 교대로 보수하거나 경계 역할을 하였다.................

산성내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해 10개의 절이 세워졌는데 장경사가 창건 당시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 안내문 >

 

고즈넉한 산사 경내를 잠시 둘려 보고는 다시 성곽길로 걷게 된다

 

 

 

 

 

 

 

 

 

 

 

▲ 제2 암문 ( 第二暗門 )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이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본성에 11개 봉암성에 4개 한봉성에 1개가 설치 되어있다  이 암문은 장경사신지옹성으로 출입하던 곳으로.......

폭이 1.3m, 높이가 1.42m로서 비교적 큰 편이며 본성에 설치된 11개 암문 대부분이 문 밖에서 보면 .............

문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지만 제6암문과 이 암문은 " ㅡ " 자로 만든 평거식 문이다

< 안내문 >

 

안내문을 본 후에 암문을 통해 들어가 본다  또 다른 성곽이 시야에 들어 온다 

바로 장경사신지옹성이다

 

 

 

 

 

 

▲ 장경사신지옹성 ( 長慶寺信地甕城 )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쌓은 이중 성벽을 말한다 .......................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을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장경사신지옹성은 한봉성과 봉암성에 대한 방어를 주목적으로 설치 되었으며 둘레가 159m이다...................

옹성 끝에는 2개의 포대가 설치 되었고 포루의 좌측벽에는 이방이라 불리는 무기나 화약을 저장하는 시설이 있었다

< 안내문 >

 

장경사신지옹성에서 한 동안 둘려보게 된다

남한산이 가까히 보이며 잔설이 산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어 이렇게 따사롭지만 아직은 겨울철임을 보여준다

다시 암문을 나와 성곽길을 걷게 된다

 

 

 

 

 

 

 

 

▲ 남한산성군포지 ( 南漢山城軍舖址 )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이다  남한산성네에는 125개소의 군포가 있었다하나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 남한산성여장 ( 女墻 )

 

여장이란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

여장에는 중앙에 근총안 1개와, 원총안 2개 등 3개의 총안과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활을 쏘기 위한 타구( 垜口)가

마련 되어있고 남한산성 여장 규모는 길이 4.2m, 높이 1.3m, 폭 0.8m 내외가 일반적이다        ....................... 

< 안내문 > ................

 

이곳에서 벌봉으로 가는 길에는 봉암성이 있다  이곳은 아직 복원 되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이다

성곽이 무너져 그대로의 모습에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이제 북문을 향해 걸어간다   이곳 탐방길은 봄과 겨울이 공존함을 무엇보다 뚜렸이 느낄수 있는 산행이요 탐방길이다

햇볕이 들어 온 곳은 탐방로가 녹아 땅이 질뻔하고 음지에는 눈이 그대로 있어 미끄럽고 찬 바람이 불어온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게 되니 그에 따라 산성 역시도 구불구불 하여 곡선미를 보여준다

 

 

 

 

벌봉, 봉암성으로 가는 길이다  성곽은 옛 모습 그대로이다 여긴 아직 복원이 안 되었다

 

 

 

 

 

▲ 제3암문 ( 第三暗門 , 봉암성암문 )

 

이 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 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매우 큰 편이다                               ....

이 암문은 문 윗 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홍예문이며 규모 또한 폭이 2.36m, 높이가 2.65m에

 달해 문루만 없을 뿐 성문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 안내문 >                                             

 

봉암성으로는 가지 않았다                  ........................................................  

지난해 수도권26산 제1코스를 이곳으로 해서 수어장대(청량산) 해서 간적이 있었다 

 

 

 

 

 

 

 

 

 

 

제2군포터이다  이곳 군포는 서로 다른 2동의 건물이 겹쳐 나타났다

 

 

 

 

 

 

 

 

 

 

 

 

 

 

 

 

 

성곽길에는 암문과 군포터가 내내 있어 그것을 자세히 보며 걸어가게 된다  잘 복원된 성곽이 눈으로 덮혀 있어 더욱 운치있는 탐방이 되었다  어느 탐방객이 눈을 뭉쳐 성곽 지붕 위에 한쌍의 눈사람을 앙증맞게 만들어 두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며 재미나게 만들어져 있었어 한 동안 보며 웃어 본다 성곽길을 가다보면 일부 몰 지각한 사람은 성곽 지붕 위를 걷는 이가 있다  특히나 북한산성에 .....복원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고 또한 문화재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몰지각한 사람을 볼적에 한심 스러웠다

 

 

 

 

 

 

 

 

 

 

 

 

▲ 전승문 ( 戰勝門, 북 문 )

 

인조 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다  정조3년 성곽을 개보수할때 성문을 개축하였다       ..........

병자호란 당시 영의정 김유의 주장에 의해 군사300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 법화골전투 " 라 한다                                 ..... 

이름을 전승문이라 한것은 당시 패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 

< 안내문 >

 

북문을 지나 다시 오르게 된다 연주봉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연주봉옹성도 본 후에 서문으로 향하게 된다

 

 

 

 

 

 

 

 

 

 

 

 

 

 

 

▲  우익문 ( 右翼門, 서문 )

정조3년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칭하게 된다

성문을 나와 보면 아주 가파른 경사길이다  멀리 잠실과 한강이 한 눈에 들어 온다

그러나 도회지의 극심한 스모그 현상으로 흐릿하게 보여 그 아름다움은 느낄수 없어 아쉽기만 하였다

이제 남한산성의 제일 높고 하이라이트인 수어장대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  수어장대 ( 守籞將臺 )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수어장대는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에서 지은 누각이다 . .                                                                  

남한산성에 있던 5개의 장대중 중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성안에 있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

 인조2년(1624) 남한산성 축성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것을 영조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   ....                                                            

수어장대 2층에는 " 무망루 (無忘樓) " 라는 편액이 달려 있었는데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보관 되어있다                          

< 안내문 >

                        ..

남한산성에 오면  수어장대를 꼭 들려 그 앞에 올라서서 주변을 살피고 역사를 더듬어 보게 된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47일간 버티고 항전하였으나 숫적으로나 모든면에 열세라 끝내 항복하게 된다

그래서 청나라황제 태종이 머물고 있는 한강의 나루터인 삼전도(三田渡)에서 머리를 세번이나 땅에 박는

치욕을 겪게 된다

청태종은 그것을 기념 삼아 이곳에 삼전도비를 그의 공덕비라고 세우게 된다

그럼 인조는 어떠한 임금이였나  1623년 (광해군15년) 이서, 이귀, 김유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및 집권당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倧)을 왕으로 세운 정변을 인조반정이라 한다

광해군은 내정과 외교에서 비범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였지만 동복형인 임해군과 적통인 영창대군을 살해하고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경운궁에 유폐한 폐륜 행각을 했다  그로인해 북인에게 정권을 쟁취하고자하는 

서인이 인조를 내세워 반정을 하게 되어 임금에 오른것이다 

 

조선시대는 반정이 중종반정과 함께 두번의 반정이 있었다  왕이면서도 군으로 강등한 임금은 연산군과 광해군이다

중종반정은 1506년(연산군12)에 성휘안, 박원종등이 연산군을 폐하고 진성대군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이다 이 반정으로 

왕으로 오른 진성대군이 중종이다   반정으로 의해 왕위에 올라서 인지 막강한 왕권을 발휘 못하고 공신들이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공신 반열에 오른 이가 너무 많고 그 행폐가 너무 과하다하여 사림파의 정암 조광조는 개혁을 하였다

그러나 훈구파 특히 남곤, 심정의 모함으로 사림파가 몰락하게 된다

조광조의 개혁정치가 너무 과하다고 여긴 중종마져도 마치 역린을 거슬렸다하여 충신 조광조와 그 일파를 역적으로 몬 훈구파에게

손을 들어 주어 마침내 조광조는 능주로 유배되어 끝내 사사(賜死) 하고 만다   이것을 기묘사화라 한다 

 

나는 인조와 중종, 반정으로 오른 두 왕에 대한 역사를 다시금 새기면서 수어장대 주변을 거닐어 보게 된다

 

 

 

 

 

 

 

 

 

무망루 편액을 보관한 보호각이다 청량당도 곁으로 보게 된다  문이 잠겨 있어 볼수가 없었다 수어장대를 뒤로 하고 서문(지화문)으로 향해 발길을 옮기게 된다

 

 

 

 

 

 

 

 

 

 

 

 

 

▲ 지 화 문 ( 至和門 ,  남문 )이다

 

 

 

 

 

 

 

 

 

 

 

 

 

▲  제2남옹성 ( 第二南甕城 )

 

제2남옹성은 3개중 중앙에 있는 두번째 옹성이다  제2남옹성은 둘레가 318m이며 다른 옹성와는..

달리 이중으로 되어 있는것이 특색이다  옹성 끝에는 포대가 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는 홍예문이 있으며

포대는 동,서,남 3방향으로 되어있다  남한산성에 설치 된 옹성 중 규모가 제일 크다  .................. 

< 안내문 >

 

남쪽에 있는 옹성 3개중 하나인 제2남옹성은 아름다웠다  홍예문을 지나 포대가 있고

이곳에서 적과의 전투는 난공불략일것이며 철옹성 같이 보였다

 

 

 

 

 

 

▲  제2남옹성치 ( 第二南甕城雉 )

 

치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입체적으로 공격 할 수 있도록 한 시설물 중의 하나로

남한산성에는 모두 다섯개의 치가 설치 되어 있으며 이 중 본성에 4개, 봉암성에 1개가 있다           ........

남한산성은 대부분 성벽이 굴곡이 심하여 치가 별도로 필요하지 않으나 남쪽은 지형이 완만하고.....................

 성벽의 굴곡이 약하여 방어벽을 높이기 위하여 설치 하였다   .............                                               

< 안내문 > .................

 

이제 성곽을 모두 돌아 보았다  원점회귀로 다시 동문( 좌익문 )에 이르게 된다      pm  1: 30

3시간이면 충분한 산행인데도 4시간이 소요 되었다  

자세히 산성에 대해 알고자 일일히 안내문을 읽고 주변을 살폈기에 그런것 같았다 

그래도 행궁은 들리지 못해 아쉬움이 남게 된다

 잘 복원 된 남한산성 단지 봉암성도 하루 속히 복원이 되어 우리의 문화재가 수원화성처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으면 한다

 

아직 겨울인데도 오늘은 너무나 따듯하여 봄 기운이 완연함을 느끼게 되었다

성곽을 돌면서 봄, 겨울을 함께 느끼면서  걷게 되었고,  남한산성에 대한 자세한  탐방이 된 하루였다.

 

   * 언   제 :  2014. 2. 15 (토)....

* 어디에 :  남한산성 (청량산)    ...

* 누구랑 :  나 홀로 .....................

* 날  씨 :  맑았으나 스모그가 있었음  .

* 탐방코스 (제5코스) : 동문 - 장경사 - 동장대터 - 북문 - 서문 - 수어장대 - 영춘정 - 남문 - 동문 

( 7.7k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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