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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서울·경기도

윤슬이 오른 한국의 名山들(42) - 북한산 ( 다시보자 삼각산아 )

 

 

 

 

   *  백운대 정상에 오르면서 바라본 인수봉 ㅡ 암벽을 즐기는 산악인, 멀리 도봉산의 정상이 줌으로 당겨봄

 

 

  다시보자, 三角山아 ~

 

일  시  :  2010. 9. 19 ( 일 )

산행지 :  삼 각 산

누구랑 :  나 홀로

산행코스 :  산성입구 ㅡ 대서문 ㅡ 산영루터 ㅡ 행궁지ㅡ 대동문 ㅡ 동장대 ㅡ 용암문 ㅡ 위 문

ㅡ 백운대 ㅡ 백운산장 ㅡ 인수산장 ㅡ 하루재 ㅡ 백운대탐방지원센터 ㅡ 우이분소 ( 약12km , 5시간30분 )

 

 

 

 

아침에 일어나니 갑짜기 산행을 하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만년친구도 오늘은 할 일이 있다고 하니 부득이 홀로 가야만 했다

이를 줄 알았다면  미리 아는 산우님들에게 약속을 했더라면.....

그러나 개이치 않는다

혼자면 어떠랴

산이 그곳에 있고

많은 산우님들이 그 곳에 있는데 .....

 

산행지는 삼각산으로 정하고 산행코스는 산성입구에 가서 확실히 정해보기로 하고 집을 나선다

구파발역에 당도하니 많은 산우님들이 줄을 잇는다

산성입구에 당도하니 정각 10시가 된다

집을 나선지 꼭히 2시간이 된다 

 그 먼 곳에서 뭘 하려 오느냐고 예전에 어떤 이가 내게 말했다

역시 대답은 간단 명료했다

산이 그 곳에 있기에 ~~~~

 

산행코스는 어떻게 잡느냐  그래 오늘은 많이 걸어보자  힘 닿는데로

반드시  정상인 백운대는 오랜만에 오를것이다   그러면 산성계곡을 오르다 산성따라 가리라

이런 생각 하면서 오르니 어느새 " 大西門 " 에 이른다

작년 5월초에 14성문을 걷게 되었는데 수문터 외는 잘 보존되고 보수 해 두워서 성곽따라 종주를 하고 나니

삼각산에 대한 애착심이 더욱 있게 되었고, 수없이 오곤 했지만  오를 수록 새롭고 아름다움을 느낀다

 

 

 

 

 

음식점들을 철거해서 정화는 되었으나 아직 정화 작업이 끝나지 않아 보기에 흉 했으나

아랑곳 하지 않고 오르니 이제 " 中城門 " 에 이른다

조선조 숙종은 산성을 축성한 후에 산성 수비 보완 대책으로 이곳에 중성문을 축조했다 ( 숙종38년 , 1712년 )

산성계곡따라 오르게 되니 더욱 시원했으며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니 역시 산행의 즐거움을 더 해준다

 

 

 

 

좌로는 산성이 이어지는 북한산 주능선이고 우측은 의상능선이 아름답게 간 혹 보인다

이 계곡은 내가 자주 선호하는 코스 인데 어느곳으로 가던 처음 시작은 완만하고 물소리를 들어면서

산행하기에 더욱 즐겁고 특히나 옛 유적이 많은 곳이다

그 중 하나인 " 山映褸 " 에 도착해서 다시금 " 다산 정약용 " 이 이곳 산영루에 올라

다음과 같은 시를 읊은것이 아닌가

 

『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이에 날개 돋쳐 날아갈듯 같구나

십 여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메워두고 얘기꽃을 피우는데

구름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니 산 속에 갈대가 수없이 자라나

벌써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갈대 사이를 지나니 이제 " 다릅나무 " 군락지인데 이게 왠일인가

모두 잎이 떨어져 앙상하게만 보인다

가지가 가늘어 마치 수양버들 처럼 쭉 늘어져 있는 모습이 넘 아름다웠는데 이것 역시 지난 <곤파스> 태풍의 잔해인가

 

조금 더 오르니 " 행궁지(行宮址) " 가 나온다

숙종은 산성을 축조한 후에 외란시 이곳으로 와서 피신 할양으로 궁을 만들었다고 한다

숙종과 영조대왕이 이곳에 들렸다고 기록 되어 있지만 지금은 터만 숲 속에 가려 있을 뿐이다

여기서 산성으로 갈 생각으로 대동문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제 " 大東門 "에 이른다

많은 사람이 여기서 쉬고 있었다

이정표를 보아하니 산성탐방센터에서 5.2km를 오게 된셈이다 ( 11시40분 )

백운대까지는 3.1km 로 이정표는 알려준다  이제부터가 산행의 묘미를 더 해 줄것이다

 

 

 

 

대동문에서 산성따라 조금 오르니 " 東將臺 " 에 이른다

산성능선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수성대장인 <摠戎使>는 여기서 선두 지휘를 하였을것이다

 여기서 마치 내가 오늘 만큼은 총융사가 된 양 구비구비 바라보며 호령하게된다

행궁에는 나라님이 오신것인가 ? 하면서.....

 

남으로 길게 뻗힌 능선, 바로 문수봉에서 족두리봉에 이르기까지의 비봉능선이 아름답게 능선미를 자랑하며

동남방향에 우뚝 솟아있는 보현봉은 아름다움을 질세라 그 자태를 자랑이라도 하는듯 보였으며

동으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그림처럼 길게 보인다

강북의 도심지가 의정부와 양주시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늘어선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다른 쪽은 만경대의 기암들이 손짓이라도 할 듯이 보여준다

그런데 유감스런일은 도시의 고질적인 " 스모그 " 현상이다

뿌옇게 보이므로 아름다움을 반감하게된다

언제 이 도시가 청정지역으로 변 할 수 있을까

이런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백운대로 향하게 되고.....

 

 

 

 

 

동장대를 지나 잘 정비된 산성과 등산로를 오르니 " 龍岩門 " 을 거쳐  좌측에 거대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바로 "露積峰 (해발 716m ) 이다   임란시에 왜구에게 군량미가 풍부함을 이 노적봉에다 짚으로 가려 위장 했다고한다

조금 오르니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 역시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멀리 또 다른 아름다운 산이 보인다 

 " 아 ~~~ 저 곳은 어떤 산인가

넘 아름다워 꼭히 가 봐야겠다 "   고 하면서

  다짐했던 오래전에 삼각산을 처음 올적에 느낀점인데

바로 비봉능선이다   사모바위와 비봉이 너무나 뚜렸이 보인다

 

 

 

 

 

백운대가 보이며 아래에 염초봉과 원효봉이 모습을 드려내 보인다

 

 

 

 

 

白雲臺 ( 해발 : 836.5m ) !!!

드뎌  나의 시야에 뚜렷이 그 자태를 보여준다  8km를 걸었으며 산행한지 3시간이 넘어간다

정상엔 태극기가 휘날린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었고 거대한 기암절벽엔 수 많은 등산객이 줄을 잇는다

 

 

 

  * 되돌아 보니 노적봉과 그 넘어 보현봉과 문수봉이  넘 아름답게 보였다

 

 

 

 

 

 

 

 

" 衛門 " 에 이르니 산성입구에서, 백운대탐방센터에서 올려온 등산객이 쉬고 아니면 점심을 먹느라고

북새통을 이룬다  위문을 지나 드뎌 백운대 아래에 이른다

우측에 우뚝 솟은  암봉 " 仁壽峰 (해발 : 810.5m) " 이 손에 잡힐듯 나타난다

암벽가들이 수없이 암벽을 타고 있었다  그 넘어 먼곳에 도봉산의 자태가 흐릿하지만 아름답게 보여 반가웠다

그저께 보았지만 도봉의 모습을 여기서 봐도 아름다우며 또한 즐거웠다

암벽가들의 모습을 담기위해 디카 줌을 당겨 보았지만 선명치는 않았다

 

 

 

 

 

 

 

백운대를 오르는 암벽엔 등산객들로 줄을 잇고 아무래도 위험하니 자연 진행이 느릴수 밖에 없다

뒤로 돌아보니 바로 앞에 나타나는 마치 불꽃 처럼 보이는 봉우리가 시야에 꽉 차 보인다

" 萬景臺 (해발: 799.5m) "  일명 국망봉 이다 

삼각산의 인수봉, 만경대를 보았으니 이제 정상만 밟으면 삼각을 모두 보게된다

자 ~~~

기운을

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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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 白雲臺(해발 : 836.5m ) "

태극기는 더욱 펄럭인다

온 세상이 시야에 들어온다

인수봉도, 만경대도 그리고 도봉의 모든 자태도, 오봉부터 자운봉에 이르기까지

또한 원효봉에 이르기까지의 기암들이며 비봉능선과 의상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감동하게된다

아 ~~~ 삼각산아  오늘 오랜만에 정상에 올라 삼각산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는구나

언제부터인가 난, 이곳을 북한산이라 칭하지 않는다

원래 명칭이 순수 우리 고유의 삼각산을 두고 일제시에 우리의 영혼과 민족의 얼을 없애기 위해

북한산이라 개칭 했는데 아직도 그 명칭을 고치지 않는것은 당국의 잘 못이다

이곳의 산사엔 모두 삼각산이라 표시 되어있다 ㅡ

 

삼각산을 두고 우리의 선조들은 많은 싯귀를 남겼다

조선시대 병자호란시에 영의정인 <김상헌>은 중국 심양으로 끌러가면서 다음과 같은 싯귀를 남겼다

 

『  가노라  三角山아  다시보자 漢江水야

고국 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어디 그 뿐인가  고려시대의 문인 <이존오>는

 

『  세 송이 꽃 같은 기묘한 봉우리 멀리 하늘에 닿았는데

텅 빈 자연의 원기에 구름 연기 쌓였네

쳐다보니 날카로운 모습 장검을 꽂은 듯

가로로 둘러보면 올망졸망 푸른 연꽃 솟아 오른 양  』

 

또 다른 싯귀가 있으니 조선 초기의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은 이렇게 노래했다

 

『  三角高峯貫太淸   세 뿔같은 높은 산봉 하늘을 꿰뚫으니

登臨可摘斗牛星  높은 곳 오르면 가히 두우성을 딸 만하네

非徒岳岫興雲雨  멧부리는 구름과 비를 일으킬 뿐 아니라

能使王家萬歲寧  왕실을 만세토록 능히 편안케 하리로다  』

 

옛 선조들의 싯귀를 되새기며 다시 한번 조망을 맘껏 즐기고는 이제 하산길에 접어든다

내내 아쉬움은 나를 아는 산우님들과 함께 이 감격스런 모습을 함께 봤으면 특히나 만년친구가.....

 

 

 

 

 

 

 

 

 

 

 

 

 

 

 

 

 

 

하산길에 만난 기암들은 역시 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끼게 하고

다시금 보는 비봉능선과 의상능선, 그리고 인수봉과 만경대를

보고 또 보고는 백운산장으로 하산한다

 

늦게서야 가져온 점심을

계곡에서 먹으면서 다시 한 번 산행의 즐거움을, 자연의 오묘한 모습을 그리게 된다

 

 

 

 

 

인수산장을 지나 하루재에 이르게 되어 아쉬움에 뒤돌아보니 인수봉의 또 다른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오늘 산행의 大尾를 장식케 한다

일명 깔딱고개인 하루재를 넘어 도선사 앞 길을 지나 긴 아스팔트 길을 걸으며 우이분소에 이르게되니

산행은 모두 마치게된다

긴  산행이였다  12km 이상되는 긴 산행을 하면서

삼각산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이제  귀가길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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