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서울·경기

** 이천백사 산수유 축제장을 ..**

 

 

 

 

 

 

 

 

 

 

 

 

 

 

 

 

 

    봄은 정녕 우리 앞에 다가와 있었다

    긴 겨울을 벗어나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봄이 되었다

    온 세상을  무채색으로 포장 되어 있던 겨울이 이제 흐르는 세월 앞에는  두 손을 들고  양보를 해야 된다

    봄을 알리는  즉  전령사는  무엇보다 꽃이다  꽃 중에는  제일 먼저 오는것이 바로 산수유다

    山茱萸 !!!

    개나리, 진달래, 벚꽃, 매화, 목련 이 모두가 이른 봄에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인데  그 중에도  산수유가 가장

    먼저 개화 한다 

    난  이런 봄날에 집에 있기에 좀이 쑤서  나들이를 나선다

    바로 산수유를 보기 위해  산수유가 많은  이천 백사면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산수유 마을에

 

    이천 백사면에 이르게 되니 현수막엔  " 이천백사 제10회 산수유꽃 축제 " 라고  걸려있다

    아닌게 아니라 가로수도 산수유 나무로 되어있고  나무엔 노랗게 물들인 꽃이 피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니  어느새 많은 나들이 객이 나처럼 축제기간( 4월3일 ~ 4월5일 )도 아닌데도 

    벌써 봄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찾아 온듯 했다

    마을에 들어서니 온 동네가  산수유로  노랗게 물들어져 있었다

    시골 중에서도 오지에 가까운 한가로운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였다

    옹기 종기 모여 지은 부락에  담장이라고는  모두 산수유 나무로 형성 되었고

    논, 밭 두렁에는  으례히 산수유 나무가 심겨져 있어 온통  노란 물결로  물들어 있었다

   

    마을 가운데 육괴정이 있었고

 

    마을 가운데  기와 담장으로 둘려쌓인 정자같은  집이 있었다

    바로 육괴정이다

    六槐亭 !!  ( 註 : 조선 중종 14년 기묘사화로 조광조를 중심으로 至治主義와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했다는 정자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김안국, 강은, 오경, 임내신, 엄용순, 성두문 등 여섯 선비가

    友誼를 기리는 뜻에서 연못에 蓮을 심고  각각  한그루씩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유래 되었다 )

    그 여섯분의 선비는 이곳에 隱逸 하면서 산수유를 심기 시작했고

    봄에는  선비의 상징인 노란꽃, 여름엔 향기나는 잎, 가을에는 자수정 같은 열매, 겨울엔 마디마디 마다

    아름다운 눈 꽃이 피어나는 것을 즐겼다는 것이다

    이 후  계속 이곳에 사는 이 들은 심고 가꾸어 오늘에 이른다고 했다

 

    노란  산수유는  온 마을에 피어나고

 

    육괴정을  벗어나 마을   골목길을 돌아 단니니  이곳 저곳엔  곧 있을 축제 기간을 대비하느라

    천막이고  향토 음식을 파는 가게가  눈길을 끌고  곳곳에  나처럼  사진 담는  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더 많은 산수유를 보기 위해 올라보니 정말 온 마을은 산수유로  물들어져 있었다

    은은 하면서도  편안하게  그렇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귀하게 보이는  산수유 ~~~

    그래서  이  꽃을 선비 꽃이라 했는지도 모른다

    한 동안을 산수유 꽃을  바라보며  또한  나무 사이로  거닐면서  즐기다 보니

    내 마음도, 내 몸도 모두  산수유꽃으로  노란 물감을  덮혀 선듯 느껴진다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됨을 느낄땐  오후 늦은 시각이였다

 

    마을을 떠나면서 다시금 기묘사화를 생각하게되고

 

    조광조의 개혁을 추종하던  수 많은 사림파들은  목숨을  그래도 구한채  이곳에 와서

    산수유를 심어면서  선비의 굳은 절개를 지키고  조광조의 높은  뜻을 길이길이 숭배 했으리라

    左袒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정암 조광조는  결국 사약을 받고  생을 달리 했으나

    그의  숭고한 뜻은  역사에  영원히 남아 있으리라

    여기에  六賢들도  정암을  따르지 못한것을  수치 스럽게 생각 했으리라

    언제나  개혁은  이뤄져야하고  좌단을 하드라도  발전을 위 한다면 

    결코  좌단을 추종하는  이 들은 많이  있으리라 ~~

    새 노랗게,  화려 하진 않아도  은은하면서도  고귀한  산수유는 진정  선비의 넋을  간직 하였으리라.

 

 

 

                                            이천 백사면에  나들이를 하면서

                                               2009.  3.   29.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