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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동유럽&발칸반도

동유럽 여행 (1) ㅡ 체코편

 

 

 

 

 

 

 

 

 

 

 

 

 

 

 

 

 

 

 

     

       

동유럽 여행 - 체코(Czech) 편


지난해 4월 말  ( 2006. 4. 29. ~ 5. 7 ) 열흘 동안 동유럽 여행을 갔다.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5개국을 ……

첫 번째 여행지는 체코였다. 인천공항에서 오후 3시경에 이륙한 비행기는 저녁에 도착하고 보니 태양은 이미 저버렸고 프라하(Praha)의 루지네공항은 저녁놀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대한항공이 이곳에도 취항되어 프라하에 오기가 훨씬 수월해 졌으나마 장장 12시간의 긴 시간을 기내에 있기란 고역이였으나 동유럽여행을 한다는 부푼 기대감 때문에 마음만큼은 흥분해 있었다. 공항 직원은 미소를 지우며 “도브리덴(Dobry den)”하고 반긴다. 알고 보니 인사말로 ‘안녕하세요’였다.

공항을 빠져나와 프라하 시가지에 나오니 크다란 삼성로그가 반겨주었다.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저녁식사 후 프라하성의 야경을 보러갔다.

틴 교회를 지나 구시청앞 광장을 지나 카를교에 이르게 되니 프라하성의 야경이 펼쳐진다. 볼타바강 건너편에 있는 프라하성! 나의 시선이 멈추는데 끝까지 성으로 보인다. 은은히 보이는 프라하성!

내일 밝을 때 보기로하고 구시청앞 광장 카페에서 맥주를 마셨다.

맥주가 우리나라와는 전연 다르게 넘 쓰서 먹기가 거북했지만 이런데서 먹는것도 좋을성싶어 큰 글라스의 맥주를 모두 마시고나니 졸음이 엄습해왔다.

광장에 운집한 젊은이들은 열심히 뭔가 응원하는 모습이었다.

다름 아닌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축제의 무드를 이어가는 것 같았다.

춤을 추고 응원가를 부르며 괴성을 지르며 어린애를 목말을 태우고서도……

숙소로 오니 몸은 지쳐있어 시차(8시간 늦음)는 있지만 금방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프라하성으로 갔다. 9세기 경에 세워진 성이며 지금은 대통령관저로도 쓰이면서 관광객을 위해 개방되어 있었다. 성 안에는 성비트성당이 웅장한 자태로 관광객의 눈길을 끌었고 카를 4세에 의해 고딕양식으로 지워졌으며 내부는 전통적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황금소로로 오니 골목에 낮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체코의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가 생전에 살았던 파란지붕이 인상적 이였다.

프라하의 구시가 광장에서는 두 가지 명물이 있었다.

하나는 틴성당이였다. 바로크양식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두개의 첨탑은 너무도 아름다웠고 또 하나는 천문시계였다. 1400년경 한 수학자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하는데 아름답고 독특한 시계가 완성되었다는 소문이 전 유럽에 퍼지자 제2의 천문시계가 나오기를 원치 않는 프라하 시당국은 그 설계사를 장님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매시 정각에 이 시계 쇼가 펼쳐지는데 광장에는 인파가 붐볐고 시계는 위․아래 커다란 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쪽은 해와 달을 의미해서 연, 월, 일을 표시하고 아래원은 계절을 나타낸다. 매시 정각에 해골인형이 나와 종을 치면 그 위 두개의 창문이 열리면서 열두사도가 차례로 나오고나면 마지막으로 닭이 우는 것으로 시계 쇼는 끝이난다.

이제는 어젯밤에 본 카를교로 갔다. 중세 예술의 진주로 불리는 이 다리는 1350년경에 세워졌고 다리 양쪽에는 합스부르크 성직자들이 세운 성서의 인물을 묘사한 30개의 상이 장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리가 아니라 조각전시장 같았고 예술 그 자체였다.

프라하의 갖가지 관광은 점차 날씨가 개이면서 마치게되고 다음 행선지를 가기위해 브르노로 향했다. - 프라하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촬영하지 못해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프라하는 동유럽의 로마라고도 일컬어질만큼 아름답고 유적이 많은 곳이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관광을 마친 후 다시 프라하 루지네공항 오기전에 체코의 체스키 크롬로프(Cesky Krumlouv)로 왔다.

프라하와 함께 여기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해졌으며 700년의 역사와 함께 중세적 낭만 모습이 때묻지 않은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고딕양식의 성과 사적지며 붉은 기와 지붕으로 이뤄진 중세기 풍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기 역시 볼타바 강 줄기가 성 주위를 감돌아 흐르고 있었다.

붉은 빛으로 형성된 성탑은 체스키 크롬로프의 상징처럼 우뚝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