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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기/서유럽

* 서유럽여행기(12)ㅡ바티칸박물관 *

 

 

 

 

 

 

 

 * 라오콘 *

 

 

 

* 바티칸 박물관의 최고 걸작 ㅡ " 벨베데르의 아폴로 *

 

 

 

 

 

* 네로 황제의 욕조 *

 

 

 

 

 

 

 

*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 ㅡ 카페트에 베네치아의 지도를 그림 * 

 

 

                                                                                    일곱번째날 (10월8일,금) 오 후

 

 

                    식당에서 상추쌈과 함께 맛나게 한식으로 점심을 먹으니 오랜만에 입맛에 맞은듯하다

                        이제 세계3대박물관 중에 대영, 루브르는 이미 보았고 이곳에서 바티칸 박물관을 관람하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 그러면서도 카톨릭의 본산이요 교황이 사시는곳 바티칸이기에

                        작지만 영향력을 가진 나라이다

                        입구부터 관광객은 줄을 이었고 한동안을 기다렸다가 수신기를 귀에 꽂고는 입장한다

                        가이드의 설명을 놓칠세라, 사진을 담으랴 바쁘기도 하다

                        하늘은 맑아 따사로운 햇살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 한층 돋구어준다

 

                        박물관으로 입장한다  여기 역시 온갖 조각상부터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로마의 예술성과 르네상스의 위대한 예술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없어 골고루 보지 못함이 여기서도 미련이 남는다

 

                        박물관 끝에 연결되는 " 시스티나 성당 " 에 들어선다

                        성당 안은 많은 관광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모두 천장과 벽에 있는 그림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천지창조 " 였다  천장 전체가 그림으로 되어있는 천지창조!!!

                        정말 아름답고 잘 그려진 그림이였다  한 동안을 쳐다보니 목이 아팠다

                        그러면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4년동안 어떻게 그렸을까 ?

                        정말 혼이 담긴 작품이다  그 역시 목 디스크가 발생하고 한쪽 눈은 너무도 유화의 물감이

                        눈에 들어가 실명이 되었다고 하니 입을 다물수가 없다  정말 위대한 예술가이다

                        "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 라고 하드니만  정말 그의 작품은 인류 내내 영원하리라

                       

                        그리고 한쪽 벽에 있는 최후의 심판 역시 훌륭하기 이를데 없다

                        몇번이고 올려다보고 벽에 그려진 그림을  본 후에 이제 베드로성당으로 가게된다

 

 

 *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ㅡ 시스티나 성당 천정에 있는 그림 *

 

* 최후의 심판 ㅡ 미켈란젤로 작 ( 시스티나 성당의 한쪽을 장식함 ) *

 

 

 미켈란젤로 (Buonarroti Simoni, Michelangelo di Lodovico)
 1475. 3. 6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 카프레세~1564. 2. 18 로마
이탈리아의 화가·조각가·건축가·시인
 
미켈란젤로는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에 걸쳐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아왔다.
수많은 그의 회화·조각·건축 작품들은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들로 손꼽힌다.
그중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임에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스스로를 무엇보다도
조각가라고 여겼다. 그는 평생 대리석 조각에 몰두했으며 단지 일정 기간만 다른 분야의 예술작업을 했을 뿐이다.
 

미켈란젤로가 생전에 유명해진 또다른 이유는 그의 예술 생애에 대한 기록이 당시나 그 이전의 어느 예술가보다도
훨씬 풍부하게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 훌륭한 전기가 2편이나 출판된 최초의 예술가였다.
그중 하나는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조르조 바사리가 쓴 〈예술가 열전 Lives of the Most Einent Painters,
Sculptors & Architects〉(1550)의 마지막 장으로, 이 장에서 바사리는 현존하는 예술가로서 유일하게 다룬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그 이전의 다른 모든 예술가들의 역작을 능가하는 예술의 최고봉으로 평가했다.
이같은 찬사에도 충분히 만족하지 못한 미켈란젤로는 조수였던 아스카니오 콘디비를 시켜 별도로
짤막한 책(1553)을 쓰게 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구두 설명을 기초로 해서 썼을 이 책은
그가 원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켈란젤로가 죽은 후 바사리는 〈예술가 열전〉의 2번째 판(1568)에 반박론을 실었다.
학자들은 콘디비의 권위있는 저술을 선호하지만, 바사리의 생동감 넘치는 문장과 그의 책이 지닌 전반적인 중요성 및
여러 나라 말로 자주 재판되는 등의 이유에서 바사리가 쓴 미켈란젤로의 전기는 가장 일반적인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그가 남긴 수백 통의 편지, 스케치, 시 등의 유품은 생전에 누린 명성으로 당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보전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듯 엄청난 자료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종종 미켈란젤로의 주장만 알려져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미켈란젤로는 셰익스피어나 베토벤처럼 인간의 비극적인 경험을 가장 깊이있게
보편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몇 안 되는 위대한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한 큰 명성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작품이 후세 예술에 끼친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는 아마도 미켈란젤로에 의해 연상되는 거의 우주적으로 장엄한 독특한 표현 형태들이 모방을 어렵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일부 영향을 받아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런 식으로 작업했던 예술가로서
가장 재능이 있었던 예술가는 다니엘레 다 볼테라였다.
 
17세기에 미켈란젤로는 해부학적 소묘의 일인자로 여겨졌지만, 그의 예술의 보다 폭넓은 다른 요소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마니에리스모 양식을 추구한 예술가들은 그의 벽화에서 나타나는 압축된 공간이나
그 이후에 〈승리〉에서 사용한 구불구불한 자세를 채택한 반면에, 19세기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대리석 덩어리의 효과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발전시켰다. 17세기 바로크의 거장들이 그를 가장 잘 참조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실물 그대로의 유사성을 배척하기 위해 변형된 방식에서였다. 조각가 베르니니 다음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가장 잘 활용한 미술가로는 플랑드르의 화가인 루벤스를 손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