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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옥천여행기(2) - 김옥균과 명월이의 이야기가 있는 <청풍정>을 가게 된다

 

 

 

이지당을 본 후에 찾은곳은 청풍정이다 ( 2020.7.21 )

옥천읍에서 장계리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왼편으로 들어서 한적한 도로로 잠시 가니

청풍정이란 이정표가 나온다

대청호 호반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로 갓길에 주차를 해두고 200여m 가니 찾는 청풍정이 보인다

( 충북옥천군군북면석호리산21-5 )

 

 

 

대청호반을 따라 가는 길은 근래 비가 많이 와서 길은 질벅했고

호반 가장자리엔 부유물이 있어 보기에 좋지 않았다

그러나 비 온후의 날씨인지라 너무도 맑고 하늘엔 구름이 뭉실뭉실 피어 있으며

싱그러운 녹음은 호수의 푸르름과 함께 어우러져 절로 감탄하리 만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대청호반에는 정자며 산 그리고 하늘의 구름까지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으니

또 하나의 풍경이 그대로 반영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청풍정에 이르게 된다

청풍정(淸風亭)

1790년 참봉 김종경이 지은 정자로 정면3칸 측면한칸중 한칸은 온돌방으로 구조 되어 있다

1900년 화재로 소실된것을 1993년 복원 하여 오늘에 이른다

 

 

 

청풍정은 1884년 급진 개화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등)가 갑신정변을 일으키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3일만에 실패하자 고균 김옥균이 기생 명월이와 이곳에 와서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현판은 1993년 복원 당시 옥천군수 유봉열이 쓴 글씨이다

 

 

 

 

 

 

 

 

 

정자라 하지만 방 1칸이 있어 아궁이가 있었다

 

 

 

 

이곳 역시 앞 뜰이 좁아서 정면 모두를 사진 담기가 어려웠다

사실은 아니라 하지만 구전에 의하면 고균 김옥균은 기생 명월이와 이곳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는데

명월이는 유서를 남기고 정자 옆 바위에서 투신 자살을 했다고 한다

유서는 다음과 같다

 

" 김옥균선생과 함께 소일하고 있던 세월이 일생에 영화를 누린것 같이 행복했지만

자기로 말미암아 선생이 품은 큰 뜻에 누를 끼칠까바 몹시 송구스럽게 생각 한다 "

 

김옥균은 시신을 수습하고 투신한 바위에다 <明月岩>이라 글을 새겨 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찾아 봐도 볼수가 없었다

아마도 물이 많이 차서 그런듯 했다

 

 

김옥균 (金玉均, 1851~1894)

호는 고균(古筠) 조선의 근대화와 개화사상을 주장했던 급진개화파이다

갑신정변 실패로 일본, 상하이로 망명생활하다 1894년 홍종우에 의해 암살 당했다

 

 

 

물이 차서 암각한 명월암은 결국 찾아 보지 못한체 발길을 돌리게 된다

지금은 청풍정이 대청호가 만수가 되면 정자 바로 앞 까지 수위가 높을듯 하지만

예전에 이곳은 4km나 되는 모래사장과 1만평이 넘는 소나무 숲이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천하절경지라 한다

옛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명일암의 암각서를 보지 못함에 아쉬움을 남기게 된다

명일암의 기암은 높이 20m나 된다고 한다

 

 

 

 

 

 

 

 

김옥균과 명월이의 로맨스가 깃든 청풍정은 역시 바로 앞에서는 전부를 보지 못하고

입구 도로에서 바라다 보게 된다

푸르름이 대청호수에 그대로 반영되고 그 가운데 청풍정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풍경에 매료 된 여행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