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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제천여행기(1) - 천하절경 옥순봉과 구담봉을 유람선을 타고 보게 된다

 

 

 

* 대문사진 : 옥순봉

 

 

 

 

 

제천여행기 (1) - 천하절경 옥순봉과 구담봉을 유람선을 타고 보게 된다  "

(  2018.  4. 13. 금  )

 

 

제천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

마침 청풍호벚꽃축제가 13일부터 15일까지 라고하니 여행시기는 잘 맞추게 된다

동행자는 만년지기와 지인부부이다 

일찍이 집을 나서 제천에 이르게 되니 생각과는 다르게 벚꽃이 거리에 만개한 상태이다 

단지 날씨가 잔뜩 찌푸린것이 유감이지만 ......

제천 여행중 먼저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구담봉을 본 것을 포스팅 해 본다 

 

* 1박2일 여행일정

     4월13일 금 : 옥순봉과 구담봉 - 청풍문화재단지 - 정방사 - 도담삼봉

   4월14일 토 : 의림지 - 베론성지 ( 비로 인해 두곳만 들리고 귀가 )  

 

 

 

 

 

유람선 선착장은 청풍랜드 아래에 있는 " 청풍유람선 " 이다

오래전에 제비봉을 산행 한후에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탄 기억이 새록새록나게 되지만

옥순봉과 구담봉을 제대로 보지 못 했기에  제천에 오면 반드시 유람선을 타고 두곳의

절경을 보리라 맘 먹었는데 오늘에사 그 뜻을 이루게 된다

 

유람선에 오르게 된다

마침 청풍랜드 앞 청풍호에는 수경분수가 하늘을 찌를듯이 높게 치 솟아 오른다

바람에 의해 분수는 길게 휘날리기도 한다

 

 

 

 

 

유람선은 서서히 청풍호반의 물결을 가르면서 미끄러지듯 떠나게 된다

청풍문화재단지가 눈 앞에 보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월악산 영봉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산에는 산 벚꽃이 피어나 마치 흰 물감을 뚝뚝 떨어트린듯 보인다

월악산국립공원은 어느곳보다 산세가 아름다워 " 동양의 알프스 " 라고도 한다

월악산 영봉을 비롯해 금수산, 만수봉, 제비봉, 외솔봉, 작은동산, 성봉 등을 산행 해 보았지만

어느 하나 빼 놓을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의 산이요, 금수강산이였다

청풍대교 아래로 해서 옥순대교를 지나니  유람선의 선장이 방송을 한다

바로 우측 앞에 보이는것이 옥순봉이라고

 

 

 

 

 

 

 

 

 

 

 

 

 

 

 

 

 

 

 

유람선이 * 옥순봉에 가까울수록에 옥순봉의 아름다운 자태가 적나나하게 드러내 보이는데

그져 멍하니 쳐다보다 마구 카메라 셔터를 눌려댄다

옥순봉 위는 산행을 통해 올라가보고 거닐게 되었지만 바로 앞에서는 처음이 아닌가

 

 

* 옥순봉(玉筍峯)
옥순봉은 여러 개의 우뚝 선 봉우리가 비가 갠 후 죽순이

 힘차게 돋아난 것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달라고

 청풍부사에게 청하였으나 거절하자

석벽에 단구동문 (丹丘洞門) 이라고 새겼는데 이는 "아름다운 신선의 땅인 단양으로 들어서는 문"이라는 의미다.

정조는 단양지방 일대의 산수에 대해 듣고 왕이 궁궐을 비우고 비경을 구경하러 갈 수 없자,

 단원 김홍도에게 단양일대 수려한 비경을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부탁했는데

그 그림이 유명한 병진년화첩으로 화첩의 그림 중 하나가 옥순봉을 그린 *옥순봉도라고 한다.

(다음백과)


 

< 단원 김홍도의 옥순봉도 >

 

 

 

 

 

 

 

 

 

 

 

 

 

 

 

 

 

 

 

 

배는 자꾸만 미끄러져 가게 간다

잠시 머물어 준다면 감상을 잘 할텐데 ......

층층이 포개진 기암들이며 그런 가운데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퇴계 이황선생이 단양군수에 재직중에 도담삼봉, 석문, 사인암,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 그리고 구담봉까지

절경지 대열에 끼웠는데 옥순봉이 탐이 난지라 청풍부사에게

청원했지만 거절하자 옥순봉 바위에다 *단구동문이라 천하 명필로 쓰 두어니

그 글씨에 반한 청풍부사가 그제사 단양팔경에 들도록 했다는 후문이 있다

 

* 단구 - 단양의 옛 이름

 

 

 

 

 

 

 

 

 

 

 

 

배는 마치 백조가 유영하듯 청풍호를 미끄러지듯 가고 있었다

이제 눈 앞에 드러내 보이는 구담봉을 보게 되는구나 

 

 

 

 

 

거북이 모습과 흡사하다는 * 구담봉 역시 아름다웠다

 

* 구담봉(龜潭峰, 330m)

 

단양 구담봉은 단양군 단성면과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는 바위로 된 암봉이다.

석벽 위에 바위가 있는데 물속에 비친 모습이 거북의 형태를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에서 단양을 향해 가면 거북 한 마리가 뭍으로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산이 보인다.

제비봉과 금수산, 멀리는 월악산이 감싸고 있어 충주호 수운관광의 백미로 손꼽히고 있다

 

구담봉하면 빼놓을수 없는게 퇴계 이황선생과 관기 두향과의 로맨스이다

여기서 최인호작가님의 " 유림 "에서 기술한 이황선생과 두향과의 애절한 사랑 한 대목을 소개 해 본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30세나 아래인  관기 두향과의  로맨스를  즐기게 된다

     공자의  유교 사상을  이황이  완성 시킨  조선 최대의  성리학자 지만  그래도  남녀간의  상사지곡은

     없을수 없는법,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강선대에서  밤이 깊도록  두향은  거문고을 뜯게되고  퇴계는

     노래를 , 시를 읊으면서  사랑은 깊어가나  9 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발령 받게되니 결국은 이별을 하게되고

     너무나  서러운 이별인지라  퇴계는  두향의 속 치마폭에  별시를  남기게 된다

  

                               『 死別己呑聲  生別常惻惻 』                            

 

                              ㅡ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더라 ㅡ                   

 

     결국  이별하게되고  두향은 그길로  관기 생활도 그만두고  칩거 생활에  들어가게되고.... 

     퇴계는  풍기군수 후  낙향하여  고향인 안동의  도산서당에서  후학에, 학문에 열중 했는데

     비록 헤여졌으나  못내 못 잊어  두향은  종자 ( 從者 ) 여삼에게  평소에  퇴계가 좋아하는  매분 ( 梅盆 )

     하나를  보내게 되고  퇴계는 종자에게  우물 ㅡ열정ㅡ 에서 길러온 그것도 아무도 안 들린 이른 새벽에

     몸소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정화수 한동이를  두향에게 보내게 된다

     두향은 20년 동안 속 치마폭에  퇴계선생이 써준 별시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졌던것이 아닌가

      ㅡ 사별기탄성  생별상측측 ㅡ  마치 살아있는 나으리의 육신을 대하듯 열자에  불과한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또 들어다 보곤하였다

     두향은 즉흥시로  다음과 같이  읊프면서  나으리를  그리워 했으니....

                        

                            "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오리                            

                               무심히  거울드니  얼굴만 야윗고야                             

                               백년을 못 사는  우리 인생                                        

                               이별 만이  더욱 서러워라  "                                      

 

     방안으로  스며든  월색은  더욱 교교 해져서  굳이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두향이가 보낸 치마폭에  정화수와 함께 20년 만에 나으리께서  또 다시  詩 한 수를  적어 주셨다

 

                            『  相看一笑天應許,                                        

                                  有待不來春欲去  』                                     

 

                            ㅡ 서로보고  한 번 웃는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ㅡ                          

 

     두향은  치마폭에  새로 선  완성된 전별시로 생각하고  보내온 정화수를

     " 어떻게 마셔 없애 버릴수 있겠는가.  이물은 오직 나으리를 위한 정안수로만  사용 할것이다 "

     천지 신명께  나으리를 위해 비는 淨化水로만  사용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날밤,  두향은 강선대에 나아가  얼음장같이 차디찬  강물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몸을 씻고  언젠가는  이 강물이 자신의 육신을 집어삼킬  인당수라는  예감을 느낀다

     목욕 재게한후  사기 주발을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을 올려놓고  치성을 드렸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신지기께  비나이다  일월성신께 비나이다

         소첩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나으리께  무병장수 하시기를  비나이다

        행여 나으리께서  연세종명 ( 捐世終命 ) 하시거들랑 이 소첩도 한 날 한 시에 숨을 거둘수 있도록

        사원무위 (使願無違 ) 하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

     그 날부터 시작된  정안수의 致誠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퇴계가 죽는날까지  2 년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되었다고 한다

     선조 3년 1570년 12월 8일 유시 (酉時)에  퇴계 이황은 숨을 거둔다

     바로 그 순간 두향의 부엌 한구석에  보관된 정화수가 갑자기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본 두향은 나으리께서 분명 변고가  있다하여 단양에서 안동까지 2 백 여 리의 험난한 산길 죽령을 넘어

     나흘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토계리에 도착해 보니 나으리는 예상되로 연세종명 하셨다는 것을 알게된다

     두향은 "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사랑하여 인간으로서의 깨닫음을 얻게하고, 나를 알아주고, 가르치고

     사랑한 사람은 나으리 인것이다 "

     지체 낮은 기생의 신분으로 서당 안으로 들어가서 문상을 하지 못하고

     도산서당을 향해 밤을 새며  望哭을 하였다

     두향은 단양으로 다시 돌아와 퇴계와 이별 한 후 단 한번도 손에 들지 않았던 거문고를 들고는

     생전에 퇴계가 각별히 좋아했는 "시경 "에  나오는  < 고반 (考槃) > 이란 시를  뜯는것이다

     이 노래는  퇴계가 단양군수로 있을적에 강선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듣던 애창곡이다

    

                            『  즐겁도다   물가에  숨어사는 삶은                       

                                 큰 사람의  유연한 모습 일러라                          

                                 홀로  잠 자고 홀로  밤을  새니                           

                                   그  즐거움  남에게 알려 무엇하리  』                     

 

     모든것을 정리한  두향은 퇴계가 생전에  써 주었던  전별시가 적힌 치마를 입고

     강선대  위에서  잠시 타오르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으리의  시를

     소리내어  읊고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바위 아래로 떨어져 

 강물 속으로 내려 곶히게 함으로써  삶을 마감한다

     두향은   " 남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선대 위에 묻어 주십시오 " 라는  짧은  유서 한장을  남긴채........

    

 

 

 

 

유람선은 여기서 유턴하게 된다

장회나루 건너편의 말목산 자락에는 이황선생의 연인 두향의 무덤이 있다

구담봉을 중심으로 장회나루 부근 특히 강선대는 퇴계와 두향의 애특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였던 월암 이광려(李匡呂)는 퇴계 사후 150년 뒤

두향의 묘를 참배하고

 

" 외로운 무덤이 관도변에 있어   

거친 모래에 꽃도 붉게 피었네

두향의 이름이 사라질때에     

  강선대 바윗돌도 없어지리라 "  

 

라는 시를 한 수 헌사하였다고 한다

 

 

 

 

 

 

 

강선대는 지금은 수몰이 되어 보이지도 않고 두향 묘 역시 이장하여

그 위로 옮겼다고 한다

 

 

 

 

 

 

 

 

 

 

 

 

 

 

 

 

 

 

 

 

 

 

구담봉을 거쳐 다시 옥순봉으로 오게 된다

다시봐도 멋진 옥순봉이다

예전에는 강이 있었고 강 주변으로 걸어가면서 옥순봉을 보았으리라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여기서 산수화를 그리면 어느곳보다 멋지고 좋은 곳 일게다 

 

 

 

 

 

 

 

 

 

 

 

 

 

 

 

 

이제  유람선은 선착장에 이르게 된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옥순봉과 구담봉을  유람선을 타고 보게 되어  감탄스러웠다

이황선생이 탐이나 단구동문이라 할 만했으며,

  두향과의 로맨스는 다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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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제 블방을 찾아주시는 블친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동유럽과 발칸반도 몇 개국을 여행하느라 집을 비우게 됩니다

다녀왔어 찾아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