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사진 : 일두고택
" 함양여행 2 - 좌안동우함양이란 말처럼 함양은 양반이 살던 고장이였다 "
( 2017. 5. 19. 토 )
화림동계곡따라 오르면서 본 일곱개의 정자는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메카라 할만 했다
그런후에 좌안동우함양(左安東右咸陽)이란 말을 실감케 할 함양의 명소를 찾아 나서게 된다
먼저 일두 정여창고택을 방문하게 된다
일두고택으로 가는 골목은 전형적인 한국 전통마을 분위기였다
솟을 대문을 들어서니 ㄱ자형식의 사랑채가 나온다
며칠전에 1박2일 TV에 방영된 바로 그 곳 이였다
일두고택(一蠧古宅, 중요문화재제186호)
조선조 5현의 한 분인 문헌공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으로
이 집은 선생이 타계한지 1세기 후에 후손들에 의하여 중건되었고
솟을 대문에 충. 효 정려 편액 5점이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대문간을 들어서서 직행하게 되면 안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고
동북으로 비스듬히 가면 사랑채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문헌세가(文獻世家), 충효절의(忠孝節義), 백세청풍(白世淸風)등을 사랑채 현판이 있다
뒤편으로는 가묘(家廟)와 별당, 그리고 안사랑채가 따로 있다.
특히 본 가옥은 TV드라마 '토지'의 촬영 장소로 이용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져
많은 문화유적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백과사전에서 )
안채를 통하는 문을 들어서니 안채가 제법 큰 한옥이였다
민박을 하는데 여쭤보니 숙박료가 너무나 비쌌다 ㅎㅎ
담장 앞 화단에는 장미가 너무도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붉은 장미, 연분홍장미 모두 아름다워 탐스럽게 보인다
1박2일에도 방영 되었듯이 소변받이가 마치 구유처럼 보인다 ( 위 사진 가운데 )
예전엔 소변도 훌륭한 거름이 된다하여 받아 두었다
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처럼 모두가 한옥이였고 고택이였다
여행자는 마치 조선조에 살고 있는 착각에도 빠지게 된다
이곳 마을은 민박집이 많다고 관리인은 말한다
한옥체험과 옛 선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느끼기에 좋은듯 했다
이제 정오가 지났는지라 식당을 찾게 된다
일두고택에서 나와 언덕 위에 있는 함양객주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음식이 정갈하면서도 담백하였다
맛나게 식사를 하고는 그 옆에 있는 정일품명가도 보게 된다
정일품명가 : 한옥문화체험호텔, Tel 055-964-8949 / 010-3715-9921
함양객주 : Tel 055-964-3004 / 010-6268 -1779(지곡면개평길39)
풍천노씨 대종가집도 보면서 개평마을을 나서게 된다
아름답고 평화스런 마을이였다
이제 교수정으로 가게 된다
교수정에 이르게 된다
교수정(敎授亭)은 고려말 두문동72현 중 한분인 덕곡 조승숙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태조7년(1398)에 지은 정자이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성종은 선생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제문을 내렸는데
'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 '이라는 여덟자를 자연 암반 위에 새겨
거북머리를 조각하고 비를 세웠다
교수정을 떠나 이제 남계서원으로 향하게 된다
남계서원(사적제499호)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1552년(명종7)에 지었다.
1566년(명종 21)에 나라에서 ‘남계(灆溪)’라는 사액을 내려 공인과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되었다.
정유재란(1597)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1603년(선조 36)에 나촌으로 옮겨지었다가,
1612년(광해군 4) 옛 터인 지금의 위치에 다시 지었다.
숙종 때 강익(姜翼)과 정온(鄭蘊)을 더하여 모셨다. 따로 사당을 짓고 유호인(兪好仁)과 정홍서(鄭弘緖)를 모셨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중의 하나이다.
( 백과사전에서 )
서원은 풍영루와 묘정비 옆 서재를 보수 중이라 어수선 했다
동재를 양정재라 하며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강당의 동쪽에 있어 동재라 한다
지금의 기숙사와 흡사함 셈이다
강당 뒷편 계단을 오르니 사당이 있었다
그 우측엔 제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었다
선비를 비유하는 배롱나무는 서원이나 향교에 많이 식재 함을 알수 있다
풍영루와 서재는 보수 공사로 인해 어수선 했다
이제 남계서원 바로 옆에 있는 청계서원으로 가게 된다
청계서원은 연산군때 기묘사화로 희생된 김일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사당격인 청계사가 강당 뒷편에 있었다
강당 양편은 동재와 서재가 있었다
남계서원과 청계서원을 보게 되었다
일두 정여창과 김일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두 서원은 보수공사로 인해
어수선 하긴 했지만 선조들의 학문의 장이요 영령을 모신 서원은
어디서나 거의 같은 구조로 배치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상림공원으로 가게 된다
상림공원에 이르니 역시 공원답게 울창한 숲이 우릴 반겨준다
숲길을 걸으면서 여행의 피로를 풀기도 한다
걷는 길엔 아주 인상적인 나무를 만나게 된다
한쪽은 느티나무이며 다른 한쪽은 개서어나무였다
소히 말하는 연리목이다
함화루를 만나게도 된다
사운정도 만나게 되고 ......
상림공원 중앙으로 흐르는 실개천은 노란창포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문창후최선생신도비(文昌侯崔先生神道碑, 경남문화재자료제75호)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887~897)때 천령군태수로 있던 고운 최치원이
홍수룰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만든 공적을 기려 세운 비석이다
이 비석은 1923년 문중에서 세운것이다
상림공원도 나서게 됨으로써 이번 여행은 막을 내리게 된다
칠암자순례길도 지리산 마루금을 늘 보면서 걷는것도 좋았으며
보물과 국보가 즐비한 실상사와 백장암 탐방도 인상 깊었으며
좌안동우함양이란 함양의 옛 선비들의 생활과 유물, 유적을 볼수 있는
화림동계곡의 정자와 일두고택, 남계,청계서원 모두를 보게 되어
유익하고도 보람을 느끼게 된 여행이 되었다
함께 한 이웃 두부부도 좋았다고 하니 주관한 나 역시 보람도 갖게 된다
여행은 언제나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버킷리스트로 올려진 함양 여행과 칠암자순례길 모두를
좋은 날씨에 동반자 역시 좋은 분들과 지낸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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