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경상

[ 함양여행 1 ] -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메카인 화림동계곡을 찾게 된다




* 대문사진 :  거연정






"  함양여행 1 -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메카인 화림동계곡을 찾게 된다  "

(  2017.  5.  19.  금  )



어제는 남원의 실상사와 백장암 탐방과 지리산칠암자순례길을 걷고는

함양으로 오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함양 여행을 올려고 벼루었는데

불과 하루동안 만의 시간을 갖고 함양의 주요 명소를 찾아 나서게 된다

간 밤의 숙소는 용추그린하우스( Tel 055-964-0056 )이다

펜션으로 여름철에는 참 좋을성 싶으나 요즘은 비수기라 그런지 이용자가 별로 없었다


함양에서의 첫 여행지는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메카라 일컫는 화림동계곡을 찾게 된다






펜션에서 일찍 서둘러 아침식사전에 화림동계곡의 들머리인 농월정으로 가게 된다

식당에 들려 아침 식사를 주문하고는 농월정을 찾아 나선다







계곡따라 조금 오르니 정자가 보인다

놀라운것은 비단 정자뿐이 아니였다

드넓은 계곡엔 마치 대리석 같은 매끈한 바위가 보인다 소위 말하는 너럭바위이다

오랜 가뭄인데도 불구하고 계곡에는 물이 제법 흐른다

이 계곡물은 남덕유산 육십령고개부터 흘러오는것이라 한다




너럭바위는 오랜 세월동안 물에 씻기어 대리석같이 윤이 나고 매끄러웠다

그 한켠에는 아주 아름다운 정자가 있었으니 바로 농월정이다


















너럭바위엔 온갖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오랜 세월동안 깍긴 글씨중에  화림동(花林洞) 이란 글씨가

이곳이 화림동계곡임을 잘 알려 준다












농월정 ( 弄月亭 )

조선 중기때의 학자인 함양 안의면 성북마을 출신인 지족당 박명부(知足堂朴明榑, 1571~1639)

공께서 광해군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직간하다가

파직되자 고향에 돌아와 은거생활을 하면서 방대한 너럭바위와 주변 경관이 수려한 

이곳에 서당을 짓고 심신을 수련하였다

인조반정후 예조참판과 강릉도호부사등을 지냈고 말년에는 왕이 불러도

조정에 나가지 않고 1637년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189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 되었으며 정자앞 오른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 라는

글자를 후손들이 새겨 놓았다 (아래사진)

2003년 전소 된것을 2015년 현재의 정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 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은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한다

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함축하고 있다

( 안내문에서 )





일행은 정자에 올라 지족당선생의 흉내도 내 본다

이제 농월정을 뒤로 하고 다음 명소로 길을 떠나게 된다











다음 정자에 가기전에 들린곳은 황암사이다


황암사(黃巖祠)

정유재란이 일어났던 조선 선조30년(1597)에 왜적에 맞서 황석산성 전투에서 싸우다

순국한 안의 현감 곽준과 함양군수 조종도를 비롯한 500여명의 위패가 봉안 돼 있는 사당이다











왜군을 맞서 싸우다 순국한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잠시 묵념도 하게 된다

이제 다시 화림동계곡따라 다음 정자를 찾아 나서게 된다



















황악사에서 차도를 따라 조금가니 좌측 계곡에 정자가 보인다

이 정자는 람천정(籃川亭)이다

농월정 앞의 너럭바위 보단 못 하지만 이곳도 너럭바위가 개울을 메우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요, 옛 선비들의 기상이 그대로 머문듯 했다

다시 정자가 있는곳으로 옮기게 된다












역시 좌측에 있는 또 다른 정자는 람천정에서 얼마 안 떨어진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모정(景慕亭)

고려 개국공신 무열공 배현경의 후손인 계은 배상매공께서 조선 영조시대에

후학을 가르치며 쉬던곳으로 후손들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1978년에 경모정을 건립하였다 (안내문)

 

거대한 암반 위에 세워진 경모정 역시 아름다웠다

계곡의 암반 위로 흐르는 물과 달이 떠 오를때의 풍경은 너무도 좋을성 싶었다

아쉬운것은 좀 더 관리를 잘하고,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도 쓰레기는 안 버렸으면 했다












동호정(東湖亭)

이 정자는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을 했다는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890년 경에 지은 것이다.
장만리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서하면 황산마을에 내려와

지금 정자가 있는 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이곳 역시 너럭바위가 있었다

" 차일암 " 이라는 암반과 우거진 숲이 있어 풍광이 너무도 좋았다












동호정을 오르는 계단을 통나무를 도끼로 쪼아서 만들어 둔것이 인상적이였다












화림동계곡엔 가뭄에도 불구하고 맑은 물이 흐르고 너럭바위는 어디에서나

볼수 있으며 소나무는 바위와 함께 경관을 더욱 돋 보이게 했다

이제 다음 정자가 있는곳으로 가게 된다





우리가 온 다음정자는 군자정이다


군자정(君子亭, 경남문화재제380호)

조선시대 5현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이 유영하던곳으로 정선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공의 5대손인 전세걸 세택이 일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1802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군자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으로 칭 하였다

(안내문) 











선비문화탐방로를 다시 보게 된다

농월정부터 거연정까지 일곱개의 정자를 보게 된다

영귀정과 거연정은 주변에 있어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영귀정이다

이곳은 사유지라해서 출입을 못하게 했다

겨우 주인에게 양해를 받고는 잠시 보기만 했다

아쉬운것은 문화재이니 군 당국에서 매입을 해서 탐방객이 문화재를 볼수 있게 하던지

아니면 사유지라 할지라도 볼수 있게끔 배려 했으면 했다





오늘 화림동계곡 정자문화 탐방은 거연정을 끝으로 보게 된다


거연정(居然亭, 경남유형문화재제433호)

고려 말의 충신이며 정선전씨(旌善全氏)의 파시조인 전오륜(全五倫)의 7대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全時敍)가

 1640년(인조 18)경 서산서원을 짓고 현 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으로 지었으나,

1853년(철종 4) 화재로 서산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고종 5)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 자체가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 전재학(全在學)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 안내문에서 )





거연정은 경관이 빼어났다

암반 위에 지워진 정자며, 정자를 가기위해 아치형의 목조다리

그리고 짙푸른 물과 푸르름이 가득한 숲은 보는 여행자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정자문화의 진수랄까  한 동안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된다



















아치형 목조다리를 건너 거연정에 들어서게 된다



















옛 선비들의 생활상을 이번 화림동계곡 특히 정자를 보면서 짐작 해 본다

경관이 빼어난곳에다 정자를 짓고 산수를 즐기면서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던 선비, 세상사를 모두 등지고 자연을 즐겼던 당시의 

선비는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듯 했다

 



이제 화림동 계곡 정자 탐방은 모두 마치게 된다

일곱(농월정, 람천정, 경모정, 동호정, 군자정, 영귀정, 거연정) 정자를

섭렵하게 된 셈이다  평상시에 함양에 가서 꼭 보리라고 버킷리스트에 올려진

화림동 탐방은 뿌듯한 보람을 가지면서 마치게 된다

다음에 다시 올수 있다면 단풍이 곱게 물든 11월 초에 오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시간을 많이 갖고 4km 됨직한 계곡을 걸으면서......

당국은 계곡에 탐방로 테크길을 만들면 참 좋을성도 싶다







좌안동 우함양이란 말이 충분히 이해 되고 우리나라 정자문화의 메카이다라는

말이 결코 허실이 아닌 충분한 화림동 계곡의 정자이였다

풍류를 즐기고 자연을 즐긴 옛 선비, 당시가 그립기도 했던 탐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