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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외암민속마을은 언제나 향수에 젖게 한다









외암민속마을 / 아산여행

( 2016. 4. 26 )



서산에서의 왕벚꽃을 개심사와 문수사에서 잘 본 후에 찾은곳은

외암민속마을이다   해마다 찾아오는 이곳이지만 늘 그리워 찾게 된다

그 이유는 어릴적 살던 고향에 대한 鄕愁를 느끼기 때문이다

지금쯤 그곳은 어떤 풍경을 연출하고 있을까 궁금도 하고 ......


여러번 글을 올린적이 있어 설명은 적게 합니다


외암민속마을에도 가을빛이 역력하였다   http://blog.daum.net/skh7678/1140



 

외암민속마을  

 

2000년 1월 7일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다.

마을은 북쪽 설화산()을 주봉으로 그 남쪽 경사면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으며,

서쪽이 낮고 동쪽이 높은 지형 조건으로 주택은 거의 서남향 또는 남향이다.

마을 곳곳에 냇물이 흐르며 입지가 좋고 일조량이 많으며 겨울에 북서계절풍울 막아 주는 등

지형적 이점이 있어 일찍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다. 500여 년 전에는 강씨()와 목씨()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조선 명종 때 장사랑()을 지낸 이정() 일가가 낙향하여 이곳에 정착하면서

예안이씨()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인재를 배출하여 반촌()의 면모를 갖추고 반가()의 가옥이 생겨났다.

그 뒤 이정의 6대손이며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이간(:1677~1727)이

설화산의 우뚝 솟은 형상을 따서 호를 외암()이라 지었는데

그의 호를 따서 마을 이름도 외암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만 외암()으로 바뀌었다.

마을 입구에는 밤나무를 깎아서 세운 남녀 장승과 열녀문이 있고,

곳곳에 조선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물레방아,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이 보존되어 있다.

마을에는 조선시대 이정렬()이 고종에게 하사받아 지은 아산 외암리 참판댁(중요민속자료 195)을 비롯해

 영암댁, 송화댁, 외암종가댁, 참봉댁 등의 반가와 그 주변의 초가집들이 원형을 유지한 채 남아 있는데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영암댁은 회화나무와 수석이 어우러진 정원이 아름답고, 추사 김정희의 글씨 등 문화유산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 네이버두산백과 )





































600년이 훨씬 넘는 나이를 가진 보호수 느티나무는 민속마을의 수호신과도 같았다





























디딜방아도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작은 연못에는 잘 반영된 또 하나의 봄 풍경이 마냥 아름답게 보인다

새싹이 푸르름을 더하고 영산홍과 꽃잔디가 벚꽃이 지고 난 자리를 메우기에 충분했다











울타리 넘으로 보이는 진달래꽃이 이처럼 아름다운지

초록빛의 새순과 너무도 콘셉이 잘 맞아 여행자와 눈맞춤을 하게 된다























그네, 이곳은 그네가 몇 군데 있는데

내 어릴적에 동네 어귀 작은 동산에 소나무에 메달아둔 그네가 있었다 

뭇 동네 청춘남녀가 따던 생각도 절로 나게 만든다

그네는 춘향만의 전유물이 아니지 않은가  ㅎㅎ





























붉은빛의 목단이 아니고 흰빛의 목단이 신기해서 바라보기도 하고

꽃 향기도 맡아본다  향긋한 향기는 후각신경을 마비라도 할 듯 했다





금낭화는 또 어떠한가 ?

마치 주머니를 데롱데롱 달아 둔 듯한 금낭화가

한옥집의 뜰안에 가득 피어 있었다











전통혼례 체험장도 있었다

이곳은 주말이면 많은 관광객이 몰려 각종 체험도 하고

공연도 이뤄진다고 한다 

















이제 외암민속마을도 나서게 된다

봄 풍경이 완연한 외암마을은 향수에 젖기에 너무도 좋은 민속마을이다

 단지 유감스러운것은 몇몇군데에 입장을 못하게 빗장을 걸어 둔것이

내내 서운 했다  입장료를 받으면서 왜 개방치 않는지 ?

외국 관광객도 올텐데 그들이 무엇을 보고 갈것인지

관리가 안되면 입장료를 더 받더라도 개방해서 궁금증을 해소 시켰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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