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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 아산여행 1 ] 아산 여행은 현충사부터 들리게 된다

 

 

 

 

 

 

아산시여행(1) - 현충사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아산시에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아무래도 추워지면 여행이나 나들이 하기에 그렇고 해서 오늘은 혼자서 아산을 찾게 된다

아산에도 볼 곳이 많은곳이다  대표적인곳이 현충사이며

현충사 앞에 있는 곡교천의 은행나무길도 들려보고

몇 번이고 가 봤지만 외암민속마을맹씨행단을 둘려 보기로 하고 집을 나서게 된다

먼저 현충사를 관람하게 된다   ( 2015. 10. 31 )

 

 

현충사 ( 顯忠祠, 사적제155호 )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순국한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706년에 창건하고, 이듬해 숙종(33년)‘’라 사액()되었다.

그 뒤 일본의 국권 침탈로 돌볼 수 없게 되어 한때 퇴락했으나,

1932년에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광복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이순신장군의 위업을 기리고자

고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현충사 성역화 사업을 마쳤다.

경역 면적은 16만 3096평이고, 주요 시설로 본전(殿)·구본전(殿)·유물관·고택()

활터·홍살문()·정려(), 이면()의 묘소 등이 있다.

본전은 이순신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지금의 영정은 1953년 장우성()이 그린 것으로, 표준 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구본전은 본전을 신축할 때 배전(殿)으로 이용하기로 하고 사적비()와 함께 유물관 옆으로 이전하였다.

고택은 이순신이 자라난 집으로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왔으며, 몇 차례 중수 또는 개수되었다.

활터는 옛집 옆에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 곳으로 이순신이 활을 쏘며 무예를 닦던 곳이다.

홍살문은 사당 경내를 표시하는 정문으로 1932년 중건 때의 자리에 있다.

정려에는 이순신과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 효자 제빈() 등 5인의 편액()을 보존하고 있다.

 이면은 이순신의 셋째아들인데 임진왜란 때 21세로 이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왜군을 막기 위해 싸우다 전사하였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현충사는 오래전에 들려 본지라 기억도 잘 나질 않는다

입구에는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어 가을이 깊어감을 짐작케 한다

 

 

 

 

 

 

 

 

 

 

 

 

 

 

 

 

 

 

 

 

 

 

 

 

 

 

 

 

 

 

 

 

 

 

 

 

 

충무공 옛집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무과에 급제 하기전부터 사시던 집으로

종손이 대대로 살았으며 일부는 개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집 뒤편에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가묘( 집안내 사당 )가 있어

매년 기일(음, 11월19일)에 제사를 지낸다

 

 

 

 

 

 

 

 

 

 

 

 

 

 

 

 

 

 

 

 

 

 

 

 

 

 

 

 

 

 

 

 

옛집 옆에는 은행나무 두그루가 있다

수령이 500년 이상 된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보호수로 지정 되어 있다

 

이 길따라 올라가면 충무공의 세째 아들 이면의 묘가 있다

 

 

 

 

활터

 

충무공이 활을 쏘시던 장소이며 과녁과의 거리는 145m이며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의 능선은 말을 달리던 곳으로 일명 치마장이라 한다

 

 

 

 

 

 

 

 

 

 

 

충무정(忠武井)

 

옛집 앞에는 우물이 있었다

장군과 가족이 쓰시던 우물로서 현재는 참배객의 식수로 활용되고 있다

 

 

 

 

충무문을 들어와 연못과 정려각을 본 후에 충무공이 살았던 옛집과

무예를 연마한 활터와 주변을 둘러 본 후에 현충사를 들어서게 된다

충의문을 향해 오르니 현충사가 눈 앞에 들어 온다

 

 

 

 

현충사(顯忠祀)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곳으로 1932년 민족 성금으로 중건 된 구현충사를 이전하고

1967년 성역화 사업으로 새로이 건립된 것임

묘소는 이곳에서 9km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위치하고 있다

 

 

 

 

현충사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이렇게 모셔져 있다

나는 고개 숙여 한 동안 참배하게 된다

임진왜란시에 오로지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어

세계 해전사상 전무후무한 전승무패의 기록을 남긴 영웅이시다

우리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숭상하는 이 충무공님

다시 한번 우러러 존경하게 된다

 

 

 

 

 

 

 

 

 

 

 

 

 

 

 

 

 

 

 

 

 

 

 

 

 

 

 

 

 

 

 

 

 

 

 

 

 

 

 

 

 

 

 

 

 

 

 

 

 

 

 

 

 

 

 

 

현충사 곳곳은 나무들이 곱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니 이제 단풍이 절정에 이르게 되는 계절이다

충무공의 애국심과 애민심을 새기면서 단풍을 즐기게도 된다

 

 

 

 

 

 

 

 

 

 

 

 

 

 

 

 

 

 

 

 

 

 

 

 

 

 

 

 

 

 

 

 

 

 

 

 

 

 

 

충무문을 나오면서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관람하게 된다

 

 

 

 

 

 

 

 

 

 

 

 

 

 

 

 

 

 

 

 

 

 

 

 

 

 

기념관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왜군과 조선군의 비교 화기와 충무공의 일대기와

유품등을 전시 해 두었다  그 중에 충무공 이순신장군님의 일대기를 간략하면

 

이순신 장군 생애

 

1545. 3 : 서을 건천동에서 태어남 ( 양력4.28 )

                     1565. 8 : 전 보성군수 방진의 따님과 혼인 (21세, 3남1녀를 둠)

1576. 2 : 무과에 급제 (32세)                       

1591. 2 : 전라좌도 수군절제사에 임명 (47세)  

     1592. 4 : 거북선을 만들다 (48세) 임진왜란 일어남

                                          5~9월 : 옥포,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 당황포, 율포, 한산                       

                     안골포, 부산포, 싸움에서 이기다            

1593 :  웅포에서 이기다                              

 1593. 8 :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다 (49세)    

1594. 3 : 당항포에서 싸워 이기다                  

 1597. 2 : 투옥되다 (53세)                            

        4월 : 백의종군으로 풀려 나오다. 어머니 별세

                9월 :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 명량에서 이기다

      1598.11 : 퇴각하는 일본군을 노량에서 막아 싸우다 

         남해 관음포에서 전사하다 (54세)

 

 

 

 

무과급제교지(보물제1564-7호)

충무공이 1576년 식년무과에 급제하여 받은 합격증이다

충무공은 丙科 제4인으로 급제 하였는데 이해 전체 29명 중 12등에 해당한다

敎旨란 임금이 관리에게 내리는 각종 문서를 말하는데 특히 문무과 급제자에게 내리는

교지는 붉은 바탕의 종이에 썼다하여 홍패(紅牌)라고도 한다

 

 

 

 

충무공장검 (보물 제326호) 

충무공이 1594년 4월 한산도 陣中에 있을때 만든 칼이다

칼의 길이가 무려 197.5cm에 달하고 무게는 4kg이 넘어 전장에서 실제로

쓴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마음을 가다 듬으려고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두 칼날에 왜적을 무찌르고자 하는 장군의 기상이 담긴 친필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친필은 다음과 같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 삼척서천 산하동색 )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一揮掃蕩  血染山河 ( 일휘소탕 혈염산하 )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현충사에 참배를 하고,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을 관람하고 밖을 나서게 된다

다시 한번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숭배하는 마음을 가슴 깊숙히 새기며

현충사  앞에 있는 곡교천 은행나무길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