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문사진 : 마곡사 경내에서 바라본 대광보존과 대웅보전 그리고 연등으로 가려진 오층석탑
공주에는 마곡사라는 유명한 사찰이 있다
몇 차례 다녀 왔지만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워 오니 다시 찾고픈 사찰이기에 들려 본다 ( 2015. 5. 14 )
마곡사(麻谷寺)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本寺)이다. 이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명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 설은 640년(선덕여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慈藏)이 선덕여왕에게서 하사받은 전(田) 200결로 절을 창건하기 위한 터를 물색하다가 통도사(通度寺)·월정사(月精寺)와 함께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자장이 절을 완공한 뒤 낙성식을 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 ‘삼대[麻]와 같이 무성했다’고 하여 ‘마(麻)’자를 넣어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 있다. 두번째 설은 신라의 승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이 절을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普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과, 절을 세우기 전에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이 절은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었던 것을 1172년(명종 2)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보조가 처음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은 오히려 국사를 해치려 하였다. 이에 보조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서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였더니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도둑들에게서 절을 되찾은 보조는 왕에게서 전답 200결을 하사받아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당시의 건물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가 되었다가 1651년(효종 2)에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일제강점기의 31본산(本山)시대에는 도내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 되었다
또한 이 절은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명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현재 이 절은 충청남도 70여 개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교(極樂橋)를 사이에 두고 보물 제801호인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과 보물 제800호인 공주 마곡사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802호로서 천장의 무늬가 아름다운 공주 마곡사 대광보전(大光寶殿), 강당으로 사용하는 흥성루(興聖樓), 해탈문, 천왕문, 16나한과 2구의 신장을 모신 응진전(應眞殿), 명부전이 있으며, 응진전 맞은편에는 요사채인 심검당(尋劍堂)이 ㄷ자형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다.
또 영산전 옆에는 벽안당(碧眼堂)과 매화당(梅花堂) 등이 있으며, 그 밖에도 염화당(拈花堂)·연화당(蓮華堂)·매화당(梅花堂) 등 승려가 거처하는 요사채가 매우 많다. 이들 건물 중 영산전은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서 조선 중기의 목조건축 양식을 대표할만한 것이다. 그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金時習)을 만나기 위해서 이 절에 왔다가 만나지 못한 채 돌아가면서 남긴 필적이라 한다.
또 대웅보전은 1651년에 각순이 중수한 것으로, 현판은 김생(金生)의 글씨라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특이한 2층 건물로 조선 중기의 사원건축 양식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이며, 건물의 기둥을 안고 한바퀴 돌면 6년을 장수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밖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269-1호로 지정된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1과 보물 제270호로 지정된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6, 보물 제799호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보물 제1260호 공주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0호인 마곡사 동제 은입사향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2호인 마곡사 동종 등이 있다.
이 중 오층석탑은 풍마동다보탑(風磨洞多寶塔)이라고도 하는데,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도 하나 라마교 탑과 비슷하여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탑은 임진왜란 때 무너져 탑 안의 보물들이 도난당한 지 오래이나 1972년에 수리할 때 동제 은입사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이 탑은 전 국민의 3일 기근을 막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한국·인도·중국 등 세계에서 3개밖에 없는 귀중한 탑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대광보전 마루에는 나무껍질로 만든 30평 정도의 삿자리가 있다. 이 자리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조선 후기에 이름 없는 앉은뱅이가 이 절을 찾아와서 부처님께 백일기도를 드렸다. 그는 불구를 고치기 위해서 백일기도하는 동안 틈틈이 이 삿자리를 짰다. 이 삿자리는 참나무를 한 끝에서 잇고 또 이어 한 줄로 완성한 것인데, 그는 이 자리를 짜면서 법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에게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줄 것을 기도하였다. 백일 뒤 일을 다 끝내고 밖으로 나가는데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법당문을 걸어나갔다고 한다.
부속암자로는 심정암(深淨庵)·부용암(芙蓉庵)·북가섭암(北迦葉庵)·토굴암(土窟庵)·백련암(白蓮庵)·영은암(靈隱庵)·대원암(大願庵)·은적암(隱寂庵) 등이 있다. 이 절은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특히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뛰어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전에 어렴풋이 알고 있는 마곡사에 대해 자세히 알고는 블로그를 정리 해 본다
마곡사로 들어가는 길은 우거진 숲과 부처님 오신날이 가까우니
연등이 길 가의 나무에 총총히 걸려져 있었다
싱그럽기 이를데 없는 좋은 길이였다
마곡사 들어가는 해탈문 앞에는 예전에 없던 찻집(아미티에 , Amitie)이 있어
차를 음미하는 여유로움도 가지게 된다
해탈문(解脫門)으로 들어 서게 된다
오색의 연등이 줄을 이어 있으니 아름답게 보인다
아름다운것은 비단 연등 행렬뿐만 아니다
영산전 앞의 담장에 자라는 담쟁이도 아름답게만 보인다
해탈문을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서게 되니 연등은 더욱 잘 꾸며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이곳이 극락세상인가 여겨 진다
극락교(極樂橋) 위에도 모두 연등으로 치장 해 두었다
대웅전(대광보전) 경내에는 모두 연등을 설치 해 두었다
오층석탑은 연등속에 있고 그 뒤로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층석탑 (보물제799호)
마곡사 오층석탑 조성시기는 원나라 간섭기였던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조성된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높이는 8.76m이고 상륜부에 풍마동(風磨銅)이 올려져 있는데 이것은 원나라 말기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은 양식이다
이러한 양식의 탑은 현재 한국, 중국, 인도등 세계에 3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중한 탑이기도 하다
탑의 상단부에 있는 풍마동 (風磨銅)
탑의 하단부에 있는 사방사불
동쪽에는 아촉불, 서쪽에는 아미타불, 남쪽에는 보상불, 북쪽에는 미묘성불이
양각 되어 있었다
대광보전 (大光寶殿, 보물제802호)
1782년 재건하여 1785년에 완공한 대광보전은 3단의 자연석 위에 세워진
정면5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형식이다
불상 뒤로는 영산회상도(충남유형문화재 제191호)가 걸려 있다
경내 마당에는 연등이 걸려 있어 사진을 멀리서 전체를 잘 담을수가 없었다 ㅎㅎ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제801호)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 건물은 1651년 (효종2)에 각순대사와
공주 목사 이주연이 다시 지은 것이다
재건 당시에는 금당의 용도가 아니라 경전을 보관하는 대장전이었으나 언제 현재의 용도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정면5칸 측면4칸의 아래층과 정면3칸 측면3칸의 위층으로 구성된 중층 목조 건물이다
대웅보전 각각의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가 걸려있는데 이를 대웅보전 삼세불회도(三世佛會圖)라 한다
대광보전 뒷편에 우뚝 선 2층의 대웅보전은 웅장하였다
역시 거리가 짧아 전체를 잘 담을수는 없었다
대웅보전에서 내려와 개천으로 향해 걸음을 옮겨 본다
싱그러움이 개천 물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산과 개천이 하나가 된 듯하다
개천 암벽에는 부여 고란사에만 있다고 하는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미쳐 몰라 보지 못했다
개천에서 싱그러움에 젖어 있다 다시 마곡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마곡사는 독립운동가이며 상해임시정부 주석이였던 백범 김구선생께서 한때 은거한 사찰로도 유명하다
김구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치하포나루에서 죽이게 되어
옥살이를 하던중에 탈옥하여 승려를 가장하고 이곳 마곡사에 숨어 살게 되었다
당시 은거 기념으로 향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향나무는 잘 자라고 있었다 ( 위 사진 )
백범 김구선생(1876 ~ 1949)
이 분이 대통령이 되셨다면 우리의 통일이 진즉에 이뤄지지 않았을까도 여겨진다
소탈하신 모습은 우리 서민에게 더욱 친근감을 갖게도 한다
징심정려 : 마음을 밝게 갖고 고요히 생각 함
김구선생이 손수 쓰신 글씨이다
해방이 되고 한때 묵었던 마곡사를 들려 여러분들과 함께 대광보전 앞에서 기념 사진을 남기게 된다
마곡사에서 승려를 가장하고 숨어 살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마음속 새기면서
글도 남기게 된다
그리고 태화산 주변을 산책을 하신다
그래서 지금은 백범 명상길이라 하여 그분의 족적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도 한다
이제 마곡사의 경내를 두루 보고는 범종루 앞을 지나 다시 극락교를 건너게 되며
보물중 하나인 영산전을 들리게 된다
보물중 하나인 영산전을 들리게 된다
공주마곡사영산전 (公州麻谷寺靈山殿, 보물제800호)
이 건물은 마곡사에 있는 건물중 가장 오래 된것으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것을
효종2년(1651)에 각순대사(覺淳大師)가 다시 세웠다
판액은 조선 세조가 이곳에 왔을적에 쓴것이라 한다
영산은 영취산(靈鷲山)의 준말로 석가모니가 많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가르침을 베풀던 곳을 말하는데
현재 내부는 7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불린다
영산전 현판은 세조가 김시습을 만나려 왔다가 쓴 글씨라 한다
영산전 내부는 7분의 여래불상과 1,000분의 작은 불상이 있었다
그래서 천불전이라고도 한다
영산전 앞에는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나는 절집에서 수국을 보면 불타기 전의 낙산사 경내에 핀 수국이 연상된다
너무도 아름답게 본 수국인지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가 보다
영산전 주변은 벽안당, 염화당, 그리고 매화당이 있었다
이제 영산전마져 나오면서 집으로 귀가하기전에 백범 김구선생의 명상길을 조금이라도 걷고 싶었다
마곡사 는 부속암자가 토굴암, 백련암, 영은암, 대원암, 은적암등의 여러 암자가 있었다
모두 가 보고 싶으나 그 중에 은적암을 가기로 하고 선생님의 넋을 기리면서 명상길을 걷게 된다
우거진 금강송 숲은 너무도 좋았다
산림욕하기엔 너무도 좋은곳이다 솔향이 그득히 폐부 깊숙히 들어온다
해질 무렵의 숲길은 햇빛이 숲 사이로 길게 파고 들지만 걷기에 너무도 쾌적하였다
은적암에 이르게 된다
다소 경사진 길이였지만 그 길로 가는 옆지기와 나는 힐링이 절로 된듯 하다
적막하기 이를데 없는 은적암 앞 뜰에는 모란이 탐스럽게 피어 있고
등나무 꽃은 역시 보라빛으로 눈낄을 끌게 하면서 그 향을 모란과 함께 풍기게 되니
후각신경을 마비 시킬 정도였다
그것은 내 마음부터 먼저 느끼게 되어서 인가 ?
마곡사 탐방을 마치게 된다
어느덧 해는 서녘 하늘로 기울게 되어 그림자가 길에 뻗치게 된다
여러 보물을 접하게 되고 백범 김구선생의 체취를 조금이라도 느끼게 된 마곡사 탐방은
마침 부처님이 오실 날을 축하하는 연등이 너무도 아름답게 있어 더욱 뜻 깊은 탐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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