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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공주여행(1) - 옛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알수 있는 공산성을 가다

 

 

 

* 대문사진 :  금서루를 오르면서 세워둔 비석군

 

 

 

 

세종시에서 가까운 공주 공산성을 가게 되었다 ( 2015. 5. 14 )

공주와 세종시에 대해서는 블로거 모실님의 정성 어린 포스팅으로 잘 알게 되고

또 소개 해 주신것 중에 가고 싶은곳  공산성을 가게 된다  

이미 포스팅한 금강수목원이며 방축천의 음악분수 모두가 모실님의 소개로 잘 알게 되어 찾은곳이다

블로그는 개인의 기록이다  훗날 追憶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또 많은 이들과 정보를 공유한다는  

두가지 의미가 있으리라 본다

매일같이 포스팅하시는 블로거 분들 보면 참 장하시고,  열정이 대단하시다고 찬사 드리고 싶다   

 

 

 

공산성의 개념도이다

이곳을 금서루부터 차근히 보게 된다

 

 

 

 

 

공산성 (公山城)

공산성은 웅진백제시기(475~538)를 대표하는 왕성으로 백제의 대표적인 고대 성벽이다

백제는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인해 문주왕 원년(475)에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었다

공주성은 문주왕을 비롯해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16년(538)에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길때가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였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 인조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워졌다

이 성은 금강에 접한 해발 110m의 산에 능선과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 산성으로 축조 되었는데

백제시대에는 토성이었다가 조선시대 인조, 선조이후에 석성으로 개축 되었다

성의 총길이는 2,660m이고 동서남북에 문이 있는데 남문은 진남루, 북문은 공북루가 남아 있었고

1993년에 동문 영동루와 서문 금서루가 복원 되었다

공산성은 백제시대뿐만이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감영을 비롯해 백제시대 임류각지,

연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 그리고 조선시대 유적인 쌍수정, 영은사, 쌍수정사적비, 만하루, 명국삼장비등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 안내문 )

 

 

먼저 주차장에 주차를 해 두고는 금서루로 향하게 된다

금서루가는 길에는 47기의 비석군이 줄을 이어 서 있었다

당시 관찰사나 현감, 목사등의 송덕비 였다

 

 

 

 

 

성을 따라 걷게 되면 깃발을 늘 볼수 있었다

깃발은 사신도를 재현 한것이며 테두리의 색상에 따라 그 방향을 알수 있는것이다

 

 

 

 

 

금서루(錦西樓)

금서루는 4곳의 성문중 서쪽에 설치한 문루였으나 유지(遺址)만이 남아 있었는데

이 후로 성내로 진입하는 차도로 이용되다가 1993년도에 복원 되었다

공산지(公山誌)에 의하면 문루의 규모는 동문과 같이 정면3칸, 측면 1칸의 중층건물이었다고 한다

 

금서루 부터 공산성을 자세히 보게 된다 

학생들이 단체로 많이들 왔고 관광객은 줄을 이었다  

 

 

 

 

 

 

성벽은 오르,내리면서 이어졌다

깃발도 총총히 서 있었다    방향을 표시하는 테두리는 흰색에서 청색으로 변한다

동쪽임을 알수 있었다

성 밖으로는 공주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왔다

성벽 위로 나 있는 길로 걸어가게 된다

지금까지 보아온  북한산성, 남한산성, 수원화성은 성곽으로 성을 이루고 있는데

이곳은 성벽으로 되어 있고 성곽은 없는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성벽을 따라 걷다가 쌍수정으로 발길을 돌려 본다

 

쌍수정(雙樹亭, 문화재자료 제49호)

쌍수정은 조선시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일시 파천(播遷)했을적 5박6일간 머물렀던 곳이다

쌍수에 기대어 왕도를 걱정하던 인조가 平定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이 쌍수에 통훈대부(通訓大夫)의

令을 내려섰다는 유래가 있다

 

쌍수정은 조금 높은곳에 있었고 마루 바닥이 없는 정자였다

 

 

 

 

 

 

 

 

 

 

 

쌍수정사적비(雙樹亭 史蹟碑, 도지정유형문화재 제35호)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렀던 6일간의 내용을 새긴 비문이다

비문은 인조때 영의정을 지낸 신흥이 지은것으로 글씨는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이 섰다

 

 

 

 

 

쌍수정과 쌍수정사적비를 본 후에 백제의 왕궁지(王宮址)를 보게 된다

 

 

 

 

돌로 쌓은 연못터를 볼수 있었다

연지이다   물을 담아 연못으로 쓰고 화재가 나면 소화수로도 쓰였다고 한다

 

 

 

 

 

 

 

 

 

 

백제 웅진 도읍지의 유물과 흔적을 본 후에 다시 성벽 길을 걷게 된다

울창한 숲 사이로 나 있는 성벽길은 어느새 깃발테두리의  색이 청색에서 적색으로 변해 있었다

성의 남쪽을 의미한다

 

 

 

 

성벽길을 걸어가니 또 하나의 문이 보인다 

 

진남루(鎭南樓, 문화재자료 제48호)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이며 토성 이었던 공산성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으면서

건립한 건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이었다

 

 

 

 

 

 

 

 

 

 

 

 

 

 

 

 

 

성벽길을 가다 성내로 조금가니 영은사가 보인다

다시 성벽길을 돌면서 들리기로 하고 성벽길로 다시 가게 된다

 

 

 

 

 

 

 

 

 

 

 

 

 

 

 

 

 

 

 

 

 

 

 

 

 

 

 

 

 

 

성벽따라 오르내리면서 걷다보니 또 하나의 문이 나온다

금서루에 출발하여 남쪽문인 진남루를 지나고 이제 동쪽문인 영동루를 맞이하게 된다

 

영동루(迎東樓) 

영동루는 공산성의 4개 성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으로 이미 무너져 없어진 것을

1980년에 발굴 조사하여 건물의 일부분 구조를 확인하였다

문터 옆 양쪽에서 원래의 문을 지탱하는 돌이 그대로 발견되었다

공산지의 2층3칸 건물이라는 기록을 근거로 동문의 누각을 복원하였다

(안내문)

 

 

 

 

 

 

 

 

 

 

 

영동루를 지나면서 오르는 길에서 담아본다

 

 

 

 

 

동으로 아름다운 성당이 보인다

바로  중동성당다   공산성을 나와 그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었다

 

 

 

 

 

영동루도 지나 걷고 있자니 깃발테두리는 또 다른 흑색으로 변해 있었다

백색에서 청색으로 또 적색을 지나니 흑색이다

다시 말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또 남쪽에서 이제 북쪽으로 가게 된다

성벽길을 걸으면서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시원스런 금강이 보이게 된다

 

 

 

 

 

 

다시 성내로 들어가본다  명국삼장비를 만나게 된다

명국삼장비(明國三將碑, 도지정유형문화재 제36호)

정유왜란때 왜적의 위협을 막고 선정을 베풀어 주민을 평안하게 하였던

명나라 장수 이공(李公), 임제(林濟), 남방위(藍芳威)에 대한 사은(思恩)  송덕비(頌德碑)이다

 

 

 

 

 

명국삼장비 옆에는 임류각이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 하고 있었다

임류각(臨流閣)

임류각은 백제 동성왕 22년(500) 왕궁의 동쪽에 건축한 건물로서 신하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 되었다

이 건물은 1980년에 공산성에서 발굴 조사된 추정임류각지의 구조를 근거로 1993년에 새로 복원 하였다

 

 

 

 

 

 

 

 

 

 

 

 

 

 

 

 

 

 

 

 

 

 

 

시원스럽게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임류각을 본후에 다시 성벽길을 돌게 된다

우측으로는 금강이고 좌측은 공산성의 내부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 오니 영은사가 있고 금강쪽에는  연지와 만화루가 보인다

 

연지와 만화루(蓮池및 挽河樓, 연지 - 충남도기념물 제42호)

연지는 공산성 안에 있는 연못중 하나이다

단(段)의 형태로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고

깊이는 약9m이다   연못과 금강사이에 만하루라는 정자를 세웠다

(안내문) 

 

 

 

 

 

 

 

 

 

 

 

 

 

 

 

 

 

신비스럽기 까지한 연지를 보고는 금강이 바로 아래에서 흐르고 있는곳에는

만하루가 있어 잠시 쉬게 된다

그런후에 공산성 내에 있는 사찰 영은사를 탐방하게 된다

 

영은사 (靈隱寺, 대웅전- 도지정유형문화재 제51호) 

영은사는 세조4년(1458)에 지은 사찰로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광해군 8년(1616)에 승장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관리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영은사 절집도 탐방하고는 다시 오르게 된다

위에서 보는 만하루와 연지 그리고 그 곁을 흐르는 금강은  한폭의 그림 같이 아름다웠다

 

 

 

 

 

공산성 성벽길은 늘 오르내리는 길의 연속이였다

이제 공북루로 가게 된다  4대문중 마지막 북문에 속한다

성벽 위는 공산정이 보인다

 

 

 

 

 

마지막 문인 공북루에 이르게 된다

주변은 공사중이였다 넓은 터가 시원스레이 보인다

이곳에서 아마도 군사들을 조련 시겼을것이다

 

공북루(拱北樓, 도지정유형문화재 제37호)

공북루는 공산성의 북문으로서 선조 36년(1603) 옛 망북루(望北樓)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문루건축의 좋은  例이며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강 사이를 왕래하는 남북통로의 관문이다

 

 

 

 

 

 

 

 

 

 

 

공산성을 거닐게 된다

도도히 흐르는 금강, 예전에 공주를 오가면서 늘 금강 위의 산성이 보이는것을 보고는

저곳이 무엇이며 언제 가 볼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고 가고팠던 곳인데 이제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공북루를 지나 마지막으로 금강을 내려다 보면서 오르니

공산정(公山亭)에 이르게 된다

정자에 올라 보니 공산성과 공주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공산성이였다

이제 처음 왔던 금서루로 내려가게 된다

 

 

 

 

 

 

 

 

 

 

 

 

금서루에 이르게 된다

공산성의 둘레는 3km체 안 되지만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성이였다

금서루가 보이고 성벽이 곡선을 이룬다

그 아래는 비석군이 역시 보였다

의미있는 공산성 탐방이였다

 

 

 

 

 

 

 

 

 

 

 

 

 

 

 

 

 

 

백제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공산성을 나서게 된다

공주는 한 때 백제의 수도였기에 가 볼만한곳이 많은 도시이다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하고 우선 공산성을 돌면서 본  " 중동성당 " 으로 애마의 고삐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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