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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강원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강릉 선교장을 찾아가다

 

 

 

 

* 대문사진 :  선교장의 전경

 

 

 

 

『강릉 선교장(江陵 船橋莊),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

 

강릉 선교장은 세종임금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인 가선대부 무경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상류주택으로 안채, 열화당, 행랑채, 동별당, 서별당

활래정 외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0대에 걸쳐 3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후손들이 거주하며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명성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1965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되었으며, 20세기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

 

선교장은 송소고택(경북청송), 선병국가옥(충북보은)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99칸 가옥이다

 

 

울릉도 여행2박3일을 가기 위해 하루 전날 강릉으로 가게 되었다 ( 2015. 5. 3 )

강릉에 평소부터 가보고 싶은곳 중 하나인 선교장을 들리게 된다

 

 

 

 

 

 

선교장을 들어서니 우측에 연못이 있고 연못 가운데는 작은 동산이 있으며

그 동산에는 소나무가 있고 활래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보였다

연못에 비친 반영 역시 아름다웠다

 

 

활래정(活來亭, 중요민속문화재 제5-4호)

1816년에 건립하였으며 서쪽 태장봉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 나간다는 활수(活水)의 의미다 

물 위에 떠 있는 누마루와 온돌방, 다실이 있어서 근대 한국 특유의 건축 양식과 조경미를 갖추고 있다

한국 민가정원의 극치를 보여주는 활래정(活來亭),

활래정이란 이름은 주자(朱子, 1130~1200)의 관서유감(觀西有感) 중

" 위유두원활수래(爲有頭源) " 에서 따왔다고 하며

관동8경을 지나는 많은 풍류객들이 이곳에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배롱나무에 백일홍이 곱게 피는 여름철이면 더욱 아름다울듯 했다

뿐만 아니라 선교장은 일년 내내 아름다울듯 했다 

봄에는 새잎이 돋아나 싱그럽고 꽃이 피니 더욱 아름다울테고

여름에는 백일홍이며 숲이 욱어져 또한 아름답고

가을에는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단풍이 곱게 들어 아름다우며

겨울철에는 뒤에 있는 소나무에 흠뻑 내린 설경이 너무도 아름다울것이다  

 

 

 

 

 

 

 

 

 

 

 

 

 

 

 

 

 

 

 

활래정의 아름다움에 한 동안 멈추고 보다 긴 행랑채의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동별당 (東別堂, 중요민속문화재 제5-3호)

안채 동쪽의 별채인 동별당은 안채 부속 건물로 집안 손님들의 거처로 사용한다  

동별당에는 "오은고택(鰲隱古宅)" 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 오은(鰲隱) "은 처음 선교장을 지은

무경 이내빈의 손자인 이후(李后,1773~1832)의 호이다

현판의 글씨는 여초 김응현(如初金膺顯,1927~2007)이 썼다  

 

 

 

 

 

 

 

 

 

 

안채주옥(內堂主屋, 중요민속문화재 제5-2호)

안방 마님과 여인들이 거쳐였던 곳으로 1703년 선교장 건물 중 최초로 건립한 것으로

이씨가의 큰 살림을 맡은 여인들의 거처였다

 

 

 

 

안채주옥의 부엌이다

 

 

 

사 당 (祠 堂)

선교장 집안의 선조들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곳으로 증조부(曾祖父)까지 3대가 모셔져 있다      

담과 문이 없는 구조로 선교장의 개방적인 건축 양식과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사당에는 " 오재당(吾在堂) " 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 1921~2006)이 썼다고 한다

 일중 김충현은 여초 김응현의 형인데 두분 다 이 선교장과 인연이 깊은 모양이였다                                      

 

 

 

 

 

 

 

 

 

 

 

 

 

서별당(西別堂)

안채 서쪽 별채로 집안 식구들의 서고(書庫)겸 공부방이었으며

살림을 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들의 거처로도 사용 했다고 한다

 

 

 

연지당 (蓮池堂)

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들이는 곡식이나 금전을 받을 때 사용하였고 

방은 집안 살림을 돕던 여인들의 거처로 사용 하였다  

 

 

 

 

 

 

 

 

 

 

 

뒷쪽 산책로로 가면서 내려다 본 선교장의 전경이다

정말 아름다운 선교장이였고 보기 드문 길지였다

 

 

 

 

 

활래정도 위에서 내려다보니 모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말 잘 조성된 활래정이였다

 

 

 

 

 

 

 

 

 

 

외별당도 위에서 보게 된다

 

 

 

 

선교장 뒷편은 금강송으로 욱어져 있었다

몇 백년이 된 노송이 빼곡히 서 있었다

 

 

 

 

 

 

 

 

홍예헌

선교장 주변물 밖에 있으며 집안의 친척들이 살던 집으로 기와 2동이 있다

현재는 가족 단위로 한옥숙박체험을 할수 있다

 

 

 

 

 

 

 

 

외별당(外別堂)

맏아들의 신혼 살림이나 작은 아들의 분가 이전 혹은 손자들도 사용하였으며

현재도 후손 이강융(李康隆)씨가 살고 있는곳이다

 

 

 

 

 

 

 

 

 

 

 

 

 

 

 

나는 이곳 선교장이 너무도 아름다운 고택이기에 두번을 둘러보게 된다

다시 찾은 안채주옥이다

 

 

 

 

 

안채에는 손님과 마주하는 응접세트도 있었다

 

 

 

 

 

 

 

 

 

안채와 열화당으로 이어지는 통로이다

 

 

 

 

초정 녹야원 (草亭 鹿野苑)

사랑채인 열화당의 후원 정자로서 1820년경에 지어졌다

소나무와 주변 원림 속에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다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며 검소와 베품의 덕을 수련하던 곳이다

후원에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되어 녹야원이라 부르는데

원추리의 야생력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초정에서 본 열화당의 뒷 모습이다

 

 

 

 

열화당 (悅話堂)

온 집안식구들이 이곳에서 이곳에서 정다운 이야기(悅話)를 나누며 지내자는

의미인 열화당은 선교장 열화정신의 근본이다

건물 앞의 테라스는 조선말에 러시아식의 건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준것이다

현재 작은 도서관으로서 공개되고 있다

 

열화당이라는 이름은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 가운데 다음 구절에서 연유했다

世與我而相遺   세상과 더불어 나를 잊으니             

復駕言兮焉求  다시 어찌 벼슬을 구할 것인가          

親戚之情  친척들의 정다운 이야기 즐겨 나누고 

樂琴書以消憂  거문고와 서책을 즐기며 우수를 떨쳐버리리라

 

 

 

중사랑(中舍廊)

선교장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交分을 나누던 곳이다

 

 

 

 

 

행랑채

선교장을 찾는 손님과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집사(執事)들이 긱 한곳

 

 

 

 

 

 

 

 

 

 

 

 

 

 

 

 

 

 

 

 

 

 

 

 

 

 

 

 

 

 

 

 

 

 

 

 

 

 

 

때마쳐 목단이 탐 스럽게 피어나 선교장을 목단의 향으로 가득 차게 했다

정말 우리의 전통 가옥, 양반의 생활상을 엿 볼수 있는 선교장을 나서게 된다

선교장 외에도 강릉은 오죽헌, 허난설헌생가지등  명승지가 많으나

오늘은 시간도 없지만 울릉도에 간다는 마음에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울릉도, 정말 가슴이 설레인다

울릉도에 갈려고 네번째 시도하게 되는데

과연 파도가 없어 2박3일 동안 잘 관광 할수 있을지

하는 염려로 쉽게 잠을 청 할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