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기/서울·경기

수원화성은 언제 찾아도 아름다운 문화유산이였다

 

* 대문사진 : 수원화성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 방화수류정 > 

 

 

 

모처럼만에 나들이를 하게 된다 

친목회 모임이 있어 수원의 가보정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는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해서

화성을 산책하기로 했다             ( 2015. 2. 7 )

화성은 여러번 왔지만 언제 찾아도 반갑고 거닐고 싶은 곳이다

친목회원 네집 부부는  연무대(동장대)가 있는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여러번 찾은곳이라 블로그에도 몇 번이고 포스팅을 한적이 있다

먼저  지난 포스팅 한 것부터 되새겨 보기로 한다

 

 

 

 

해 질무렵에 와서 야경까지 즐긴 나들이  ( 2013. 10. 15 )

 

▲   정조의 꿈이 담긴 수원화성에 가다        http://blog.daum.net/skh7678/716

 

 

 

 

눈이 살포시 내린 꼭히 일년전의 나들이    ( 2014. 2. 9 )

 

▲  수원화성에도 눈이 살포시 내렸다       http://blog.daum.net/skh7678/764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다시 들린 수원화성이지만  마음은 설레였다

이곳에 오면 무엇보다 효심이 지극한  정조대왕의 넋을 느끼게 되고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리 만큼

성곽이 너무도 정교하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느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주차를 하고는 연무대관광안내소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는  연무대(동장대)가 있으며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가 눈 앞에

보이고  국궁활쏘기체험장이 있기에 더욱 흥미로운 곳이다

또한 화성열차 승차장도 이곳에 있다  

 

 

 

 

 

국궁활쏘기체험장에는 두 거리를 두고 과녁이 있으며

30분마다 활쏘는 체험을 할수 있다  

과녁 뒷편은 동북공심돈과  동북노대가 보인다

 

 

 

 

동북노대이다

 

 

국궁은 오전 9:30분부터 시작하여 17:30분까지 매 30분 간격으로 이뤄지며

2,000원으로 10발을 쏠수 있다    시간표와 활쏘기 방법은 아래 사진으로 가름한다

 

 

 

 

 

 

 

 

 

 

 

 

 

 

몇 사람이 사선에 올라 활을 쏘고 있었다   동장대(연무대)가 웅장한 모습으로 보인다

일행은  활쏘기 보다는 화성을 돌아보는것이 우선인지라 그 모습을 보고는 연무대 앞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연무대 ( 鍊武臺, 동장대 )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머물던 장용어영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서장대와 동장대 두곳이 있다

동장대는 1795년(정조19) 7월15일 공사를 시작하여 8월25일 완공 되었다

무예를 수련하는 공간 이였기에 연무대라고 하였다   이곳의 지형은 높지 않지만 사방이 트여 있고

등성이가 솟아 있어서 화성의 동쪽에서 성안을 살피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 안내문 >

 

 

 

여기서 화성과 정조대왕에 대해 알아본다

 

화성 ( 華城 )   - 사적 제3호

화성은 정조대왕 제위13년만인 1789년10월7일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원침을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화산(花山)으로 옮기고 그곳에 있던 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의 중심부에 있는 팔달산 동쪽 기슭으로 옮겼다

이후 1793년 수원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794년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화성이 축조 되었다

화성의 규모는 둘레가 5.74km, 성벽 높이 5m 가량이며 여장의 높이는 약 1.2m이다

화성 성벽은 정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출발 한것이지만 당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정조대왕을 정점으로

관료,학자,기술과 백성들이 함께 만든 근대적 신도시이며 실학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화성은 정약용의 기본 설계서인  " 성설 (城說 ) " 에 기초하여 축성되었다

197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었다

< 안내문 >

 

정 조 ( 正祖 )

조선22대 왕 ( 1777~1800 ) 이름은 산, 자는 亨運이다 

조부 영조는 당파싸움에 세자인 思悼世子를 뒤주속에 가두어 죽게 한다

정조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임금에 오르자 릉을 헌릉원으로 옮기며 능원 참배를 위해

아버지를 위한 성곽을 꾸미고 새로운 도시를 축성케 했으니 이것이  華城이다

 

 

 

 

 

 

 

 

 

 

화성안내도가 자세히 게시 되어 있었다

일행은  모두를 산책하기엔 시간이 없어 절반만 돌기로 하고는 성곽을 따라 걷게 된다

화살표와 함께 세계 주요도시의 거리는  베이징이 967 km, 런던 8896 km,  리오데자네이로 18139 km,

시드니  8258 km,  남극 14114km  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연무대를 지나 이제 성곽따라 걷게 된다

하늘은 구름이 많지만 간혹 햇빛이 비치고 그 햇빛은 빛내림도 보여준다

걷기에는 춥지도 않고 참 좋았다   더군다나  친목계원 가족과 함께라써 더욱 즐거웠다

멀리 동북포루가 보인다

 

 

 

동암문 ( 東暗門 )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만든 출입구이다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 하였다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있으며 1796년(정조20) 3월25일 완공 되었다

< 안내문 >

 

동암문을 지나 경사진 성곽길을 조금 오르니 전망이 좋은 동북포루에 이르게 된다

 

 

 

동암문에서 바라본 연무대이다

 

 

 

동북포루에 이르기전에 걸어 온 길을 돌이켜 본다

연무대와 동북공심돈이 보인다  

성곽은 너무도 아름답게 축성 되어 있었다

 

 

 

 

동북포루 ( 東北舖樓 )

포루는 성벽의 일부를 바깥으로 틔어 나오게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건물이며 군사들이 망을 보면서

대기하는곳이다   동북포루는 5개 포루 중에 하나로 1796년(정조20) 5월15일 완공 되었다

< 안내문 >

 

이곳에서 일행은 잠시 쉬면서 화성 주변을 바라다 본다

구불구불한 성곽은 너무도 잘 축조 되었고 복원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동북포루에서 성의 틈 사이로  아름다운 < 방화수류정 > 을 보게 된다

 

 

 

서녘 하늘은 구름이 잔뜩 있었고 팔달산 정상에는 < 서장대 >가 우뚝 서 있었다

 

 

 

 

 

 

 

 

북암문에 이르게 된다

방화수류정을 본 후에 이 문을 통해 용연으로 가게 된다

 

 

 

 

방화수류정 ( 訪花隨柳亭, 보물1709호 )

방화수류정은 1794년(정조18) 10월19일 완공 되었다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다

"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린다 ( 訪花隨柳 ) " 라는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 때문에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은 화성에서 가장 뛰어나며 다른 성곽에서는 볼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 안내문 >

 

방화수류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丁자도 아니고 十자형의 지붕 형태인듯 했다

아래는 용연이 있고 그 옆 아래는 화홍문이 있으며 수원천이 흐르고 있다

한동안 바라보다 북암문을 거쳐 용연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동북포루와 성곽의 곡선미,

너무도 아름답게 보여진다

 

 

 

용연으로 내려오면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멋진 모습이 아닐수 없다

 

 

 

 

 

 

 

 

 

 

 

 

 

 

용 연 ( 龍淵 )

방화수류정 아래는 인공적으로 연못을 파고 가운데 동산을 만들어 소나무를 심고는

주변은 물이 고이게 한  연못, 그곳을 용연이라 한다

방화수류정이 높다랗게 보이고 주변은 대나무며 소나무 또 다른 나무들이 운치를 더 해준다

얼마전에 블로그 이웃이신 < 금모래은모래 >님 께서 이곳 용연에 대해 포스팅 해 주셨다

새 먹이를 주는 노부부에 대한 기막힌 사연을 봤기에 두리번 살폈지만 눈에 들어 오지 않았다

오전 일찍이 노부부께서는 많은 곡식을 가지고 이곳을 매일같이 찾아와 비둘기며 오리등에게 모이를

주는 모양이다  얼마나 새들을 사랑하면 하루도 아닌 매일같이 할까

그 용연에 오늘도 몇 마리의 오리떼가 유영을 하고 있었다

연꽃은 여름철에 피지만 지금은 그 대만 꼬부러져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용연 주변은 아직도 겨울 풍경이였다

갈대는 앙상해서 미풍에도 날렸다 비록 앙상한것은 갈대뿐이 아니였다

뭇 관목이나 활엽수림은 모두 앙상한 가지만이 간직한체 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보기에 안스럽고 을씨년 스럽기까지 한다

그러나 멀지않아 그 앙상한 가지에서 새 잎이 싹트고 그리고 꽃방울이 맺히게 되면

서로 다툼이라도 할세라 아름다운 꽃을 피울것이다

아 ~~~ 그날이  멀지 않을게다 

 

 

 

 

 

 

 

 

용의 입에는 맑은 물을 쉼 없이 내 품는다  ㅎㅎ

 

 

 

 

 

이제 용연도 지나고 화홍문으로 해서 수원천에 이르게 된다

 

 

 

 

 

 

 

 

 

화홍문 ( 華虹門, 북수문 )

화성을 남북으로 가로 질러 흐르는 수원천 위에는 북수문과 남수문의 두개의 수문이 있다

북수문은 1794년(정조18) 2월28일 공사를 시작하여 1795년1월13일에 완성 되었다

별칭은 화홍문으로 화(華)자는 화성을 의미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뜻한다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 안내문 > 

 

화홍문을 바라보면서 수원천을 거닐다가 영동시장, 지동시장 방향으로 가게 된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아름다운 화성의 일부분이지만 나는 이곳을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다

 

 

 

 

수원화성박물관이 보이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치게 된다

 

 

 

 

일행은 지동시장에 이르게 된다

팔달문을 거쳐 서장대 그리고 화서문으로 해서 장안문으로 가게 되면  화성을 모두 걷게 되지만

다시 연무대 방향으로 가게 된다

동이포루가 눈 앞에 보인다

 

 

 

 

 

 

 

 

 

봉 돈 ( 烽墩 )

1796년6월17일 완성된 수원화성 봉돈은 일반적인 봉수대가 주변을 잘 살필수 있는 산 정상에

별도의 시설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화성 성벽에 맞물려 벽돌로 만든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성곽 양식에서는 보기드문 형식으로 마치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게 만든 수원  화성의 대표시설이다

 

봉수신호체계 

봉수(烽燧)는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로 전하는 군사 신호체계이다

총 다섯개의 횃불 구멍을 통해 상황을 전달하는데 남쪽 첫번째 횃불 구멍부터

ㅇ 평상시에는 밤낮으로 봉수 1개      ㅇ 적이 국경 근처에 나타나면 봉수 2개

ㅇ 국경선에 도달하면 봉수 3개         ㅇ 국경선을 침범하면 봉수 4개             

ㅇ 적과 아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지면 봉수 5개를 올렸다

< 안내문 >

 

봉수에 대해 확실히 알고는 연무대로 향해 일행은 여전히 걷게 된다

 

 

 

 

 

 

 

 

 

창룡문

이제 창룡문에 이르게 되고 이어 연무대관광안내소로 원점 회귀하게 됨으로써

화성 산책을 모두 마치게 된다

시간이 없어 비록 서장대에 이르는 전체는 돌지 않았지만  친목회원님들과의 산책은 내내

즐거움 속에 걷게 되어 모처럼만에 나들이로 힐링이 제대로 된듯 했다

 

 

 

 

회원님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다음달 모임을 기약하면서 귀가길에 오르게 되었다

늘 화성을 즐겨 찾아 보지만 항상 보아도 아름답고 무언가 내게 많은 의미를 주는곳이기도 해서 좋은곳이다

정조대왕에 대해 많은 책이나 드라마, 영화가 나왔다

이조 27왕 중에 세종대왕은 말 할 나위 없는 성군 이셨고,  나는 효종과 정조임금을 흠모한다

최근에 본 영화  역린(逆鱗) 에서 정조는

 

" 바뀐다 ,

 온 정성을 다해 하나씩 배워 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

 

 

그 대사를 되새겨보며 영화 역린을 회상하면  정조대왕의 효심을 새삼 느끼게도 된다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