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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경상

진주성 촉석루 아래 의암에서 논개를 떠 올려 본다

 

여행의 마지막날이다

진주골든튤립호텔에서 여독을 충분히 풀고는 이번 남도 여행의 마지막 날은 진주의 명소중

진주성을 찾게 된다  진주성은 그 유명한 촉석루가 있는 곳이다 ( 2020.11.3 )

진주성의 관문인 공북문을 들어선다

이곳 역시도 코로나바이러스 방역수칙은 철저히 지키게 된다

발열체크를 하고 출입명부를 작성하고는 입장하게 된다

 

 

들어서니 김시민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임진왜란3대대첩 (이순신장군의 한산도대첩, 권율장군의 행주대첩, 김시민장군의 진주성대첩)이라 하는

장군의 늠름한 모습이 동상에 그대로 표현 되어 있었다

3,800명의 군사로써 30,000명의 왜군을 상대로 대승한 진주성대첩 그러나 장군은 39세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듬해 보복을 위한 왜군 10만명이 2차 진주성 공격에서 7만이라는 군,관, 민을 죽게 하는 치욕을 겪게 된다

장군의 동상 앞에서 자연히 고개를 숙이고는 먼저 촉석루로 향하게 된다

 

 

 

 

 

성곽따라 걷는 길은 가을이 절정에 이르게 됨을 보여준다

온갖 나무들은 오색의 물감으로 칠해 둔 듯 했다

 

 

쌍충사적비를 본 후에 촉석루로 향한다

 

 

 

 

 

 

 

 

*촉석루가 웅장한 모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누각이요 건축물이다

남에는 촉석루요 북으로는 대동강의 부벽루라 한다고 하더니만 ......

 

촉석루(矗石樓)

고려 고종28년(1241) 진주목사 김지대가 창건한 이후 여러차례 개축하였다

전시에는 장수의 지휘소로 평상시에는 선비들의 풍류를 즐기는 명소이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 진주고적보존회에서 지은것으로 정면5칸, 측면4칸의 팔작지붕이다

남장대라고 또는 장원루라고도 한다  ( 안내문에서 )

 

 

 

 

 

 

 

 

 

 

성곽따라 보이는 울창한 숲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었고 남강의 푸른 물결은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촉석루에서 내려와 바로 옆에 있는 *의기사를 들려 본다

의기 논개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의기사(義妓祠)

임진왜란 당시(1593년)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의기사는 논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16년(1740)에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창건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1956년 의기창열회에서 중건 하였으며 정면3칸,측면2칸 맛배 지붕의 기와집이다

 

 

의기사를 내려와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는 의암이 있는 곳으로 내려 오게 된다

그곳에는 *의암사적비가 있었다

 

의암사적비(義巖事蹟碑)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의기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詩가 새겨져 있다

 

"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 서 있네

   이 바위 아닌들 그 여인 어찌 죽을 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외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

 

 

 

 

 

사적비 아래 *의암을 유심히 보게 된다

 

의암(義巖)

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한 바위다

조선 선조26년(1593) 임진 왜란 2차 진주성싸움에서 진주성이 함략되고 7만 군,관,민이 순절하자

논개는 나라의 원수를 갚기 위해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이 바위에서 순국하였다

논개의 순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영남 사람들은 이 바위를 의암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정대륭이 바위의 서쪽 벽면에 전서체로 의암이란 글을 남기고, 남쪽에는 한몽삼이 해서체로 의암이란

글을 새기게 되었다

의암은 넓이가 3.5m에 높이 3.3m이다

 

 

논개(論介) :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1593). 전라도 장수(長水) 태생으로 성은 주(朱)씨 이다.

진주성이 왜병에게 함락되자 촉석루에서 왜장(倭將)들과 주연을 벌이던 중

한 왜장을 의암으로 유인하여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함께 죽었다.

 

 

 

 

 

나라를 위해 왜장을 껴안고 순국한 논개의 혼이 잠든 남강 의암을 한 동안 바라보다

촉석루를 떠나 다른 곳을 둘려본다

촉석문을 바라보며 간 곳은 진주성 임진대첩계사순의단이다

 

 

진주성임진대첩계사순의단 (晉州城壬辰大捷癸巳殉義壇)

진주성의 임진대첩과 계사순의 때에 호국 영령을 기리기 위해 진주 시민의 소망을 담아 세운 제단이다

단의 크기는 가로 18m, 세로 24m, 높이 3.6m이고 3단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단 위에

가로 9.7m, 높이 3.5m의 대첩비를 세웠다 ( 1987년12월 ) - 안내문에서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 조선조말 경상남도관찰사의 선화당 관문으로서 일명 망미루(望美樓)라고도 부른다

영남포정사를 지나 진주성비석군을 보고 북장대도 보게 된다

 

 

 

 

 

청계서원은 고려병부상서로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진양부원군 은열공 정신열선생과

목면 씨앗을 들어오고 물레와 베틀을 창제하신 문충공 정천익선생을 모신곳이다

 

 

 

 

 

끝으로 경절사를 탐방하게 된다

경절사는 고려조 충절이신 허공진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향배를 받드는곳이다

 

 

 

다시 한번 진주성대첩을 이끈 김시민 동상을 우러러 보면서 공북문을 나서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남도(구례,산청,진주) 4박5일의 여행은 마치게 되며 진주시 재래시장인 중앙시장에서

필요한 물품 몇 가지를 구입하고는 제일식당에서  육회비빔밥을 먹고는

귀가길에 오르게 된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움을 안겨 준다

그리고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켜 준다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다니는 여행은 조심스럽다 

대인관계를 회피하는 여행은 커다란 고역이다

그러기에 그 동안 집콕만 하자니 갑갑하기 이를데 없고 몸살이 난다

하루속히 코로나바이러스로 부터 해방되어 자유자재로 해외든, 국내든 맘껏 여행을 즐길 날을

학수고대하며 벌써 짜 놓은 버킷리스트를 들춰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