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서산여행기 (6) 해미읍성
( 2015. 10. 14 )
이제 안면도를 떠나 평소에 가 보고 싶은 곳 해미읍성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날씨는 따사롭기 이를데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해미읍성에 당도하게 된다
해미읍성은 서산9경중 당연 으뜸인곳이라 더욱 보고 싶은곳이기도 하다
해미읍성 (海美邑城)
사적 제116호. 지정면적 194,083㎡, 둘레 2,000m. 현재 남문인 진남문(鎭南門)과 동문·서문이 있고,
성내에 동헌(東軒)·어사(御舍)·교련청(敎鍊廳)·작청(作廳)·사령청(使令廳) 등의 건물이 있다.
본래 해미는 1414년(태종 14) 덕산(德山)에서 충청병마절도사영이 이곳으로 이설된 뒤
1651년(효종 2) 청주로 옮겨질 때까지 군사의 중심지였다.
이 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하여 영장(營將)을 두고 서해안 방어를 맡았던 곳이다.
『여지승람』에 의하면, 당시 절도사영은 해미현의 동쪽 3리에 있었으며,
석성으로 둘레 3,172척, 높이 15척, 우물 세 군데, 군창이 설비되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읍지에는 읍성의 둘레가 6,630척, 높이 13척,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 380첩(堞),
옹성(甕城 : 성문의 앞을 가리어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작은 성)이 두 곳,
남문은 3칸이며 홍예(虹霓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었고, 2층의 다락을 지었으며,
동문·서문도 3칸이나 북문은 없고, 우물이 여섯 군데이며, 성밖에 호(壕)는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초기의 병마절도사영과 읍성과는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데,
이 병마절도사영에는 이순신(李舜臣)이 1579년(선조 12)에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다.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으로는 가장 잘 남아 있어서 대표적인 표본으로 삼기 위하여
성안의 민가와 학교 등을 철거하고 성벽의 보수 등 연차적인 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즉,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客舍)와, 현재의 아문(衙門)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官衙)를 둘러쌌던 돌담의 자취가 발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해미읍성 [海美邑城]
* 서산9경
1. 해미읍성
2.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3. 간월암
4. 개심사
5. 팔봉산
6. 가야산
7. 황금산
8. 서산한우목장
9. 삼길포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읍성으로 오게 되는데 한 눈에 감탄 하게 된다
동문에서 남문(진남문)으로 보이는 성(城)이 너무도 웅장하기 때문이다
잦은 왜구의 침탈을 막기 위해 높이 5m, 길이 2,000m인 해미읍성은
고창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읍성중 하나이다
성곽을 따라 걷다가 웅장한 남문(진남문)을 만나게 된다
홍예문이였다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낙안읍성과는 다른 넓은 성안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성 위를 올라서게 된다
서문과 동문이 성곽따라 좌우로 보인다
진남문 바로 안 좌측에는 초가집이 세채가 있는데
전통주막과 찻집, 그리고 농산물판매소가 있었다
조선시대 무기가 전시 되어 있었다
대장군포, 화포, 천차총통, 신기전기화차, 검차, 투석기, 운재 등이다
서해안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곽이다
1579년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로
10개월간 근무 한적도 있다고 한다
* 신기전기화차
* 검 차
* 투석기
옥사에 가기전 보호수 회화나무를 보게 된다
천연기념물 제172호로 정해진 회화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넘은 고목이다
이 회화나무에 천주교 신도들의 목을 메달아 두었다고 한다
옥 사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이 옥사에서 투옥되고 처형 당했다고 한다
지난해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 하기도 한 곳이다
이곳 옥사에서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가 투옥 되고 순교했다고 한다
옥사를 나와 동문 쪽으로 가니 초가집이 나온다
이곳은 옛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재현 해 두었다
모두가 정겨운 풍경 들이다
감이 영글어 주렁주렁 메달려 있고 마당 한 켠에는 배추고 무우가 자라고
장독대에는 장독이 있으며 가마솥 아궁이가 보인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모습들이 모두 펼쳐져 있으니 마치 동심으로 돌아 간듯 했다
동헌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동헌 앞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었으며
그 둘레에는 장독으로 원을 지우며 장독 위에다 온갖 꽃들을 가꾸어 두었다
* 제비꽃
* 사랑꽃
* 뻐꾹나리
* 용 담
동 헌 (東軒)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정무를 보던 중심 건물
내 아 (內衙)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
동헌이 공무를 수행하는 곳이라면 내아는 살림집을 말한다
객 사 (客舍)
지방을 여행하는 관리나 사신의 숙소
서문(지성루)도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 해미읍성을 두루 살펴보고는 나오게 된다
동헌과 옥사를 거치면서 회화나무 아래로 걷게 된다
수많은 천주교도들의 목숨이 이 나무에 효수되고 처형됨을 상기하니
소름이 끼치게 된다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이고 일찌기 개방 하였다면
우리나라도 일본 못지않은 나라가 되었을것이며
일제강점기도 없었을 것 아닌가
오로지 권력투쟁과 정권욕으로 점철한 조선 말기의 위정자가 새삼 원망스러웠다
그런 형태는 예나 지금이나 별 다름이 없는듯 하니 ......
해미읍성을 나서게 된다
왜군을 막기 위해 성종시에 만들어진 읍성이
천주교도를 투옥하고 처형하는 피비린내 나는 장소로 전락했던 조선말의 역사현장을
나서게 되니 씁쓸한 마음은 내내 가시지지 않았다
이제 이곳에서 가까운 개심사로 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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