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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충청수영성과 갈매못순교성지를 들리게 된다

겨울바다를 보기 위해 가까운 서해로 나들이 길에 나서게 된다

찾은곳은 보령과 태안이다

보령에 먼저 찾은곳은 *충청수영성이다 ( 2021.1.25 )

국도를 따라 가다보니 성곽이 보이고 우뚝선 정자가 보이길래 차를 멈추게 된다

이곳이 충청수영성인줄 오늘에사 알게 된다

 

충청수영성(사적제501호) : 조선 초기에 설치된 충청수영은 충청도 해안을 방어하는 사령부 역할을 하였으며

조운선의 보호와 안내 그리고 외적을 방어 역할을 하다가 1896년 폐영 되었다

1510년 수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성이며 현재는 1,650m가 남아 있다

 

충청수영성

먼저 서문(망화문)으로 들어 서게 된다

홍예문으로 된 서문은 잘 쌓은 성임을 짐작케 한다

 

 

 

 

 

성문을 올라서니 시야에 들어오는 풍광은 보고픈 바다이다

그리고 수많은 어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었다

이 항구가 오천항이다

 

 

성은 마치 S자 형을 이루고 있었다

 

 

성안에는 기와집이 보인다

바로 *진휼청이다

 

충청수영 진휼청( 충남문화재제421호)

충청 수영성 안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진휼청을 비롯해 객사와 삼문(三門)만이 남아 있다

진휼청(賑恤廳)은 흉년에 충청수영 관내의 빈민 구제를 담당하던 곳이다

정면5칸,측면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청,온돌방,툇마루,부엌등이 있다

 

 

진휼청을 본 후에 구릉지 정상에 이르니 거대하면서 아름다운 정자가 보인다

바로 *영보정이다

 

영보정 : 수영성 안에 있던 정자로 1504년 수사 이량(李良)이 처음짓고 계속 개축 해 온 우리나라 최고의 절경 정자이다

영보정(永保亭)은 천하 명승으로 알려져 유명 시인, 묵객(정약용, 이항복등)이 방문하여

많은 시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영보정의 모습을 주변을 돌면서  바라본다

여기서 보는 오천항도 한 눈에 들어 온다

 

 

 

 

 

영보정을 다시 바라보면서 다음 여행지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충청수영성 천주교순례길 안내도를 보면서 모두를 걷고 싶지만  그 중에 갈매못순교성지로 가게 된다

 

갈매못순교성지

수영성에서 해안따라 조금 오니 *갈매못순교성지에 이르게 된다

순교성지는 바닷가 도로에 접해 있었다

성지 마당에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그리스도상이 양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온 누리의 어린양들을 포근히 감싸 주는듯 하다

 

갈매못순교성지

1866년 3월30일(병인박해) 수난 성 금요일에

" 성 다블뤼 주교, 성 오메트로 신부, 성 위앵 신부, 성 황석우 회장, 성 장주기 회장 " 께서

순교한곳이다

200여명의 군인들이 둘러서 있는 가운데 지역 주민들과 신자들이 순교의 현장을 지켜 보았다

성인들은 망나니의 칼날 아래에 한분, 한분 목이 잘렸고 순교자들의 솟아 오르는

피는 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짙붉게 물들어 놓았다

다섯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걸렸을때 은빛 무지개 다섯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그 피의 순교터에 복자비와 성인비를 세워 성인들의 삶을 기리고 있다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은 1984년 5월6일 서울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諡聖) 되었다

(안내문)

 

 

 

 

 

 

 

 

순교복자비와 순교성인비가 나란히 서 있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잠시 묵상하게 된다

 

 

뒷편에는 울창한 송림 사이에 성체조배실 건물이 보인다

 

 

 

 

 

병인박해 당시 이곳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망나니의 칼날에 목숨을 잃은 다섯분 순교자의 사진을 바라본다

가슴속까지 슬픔이 저려 오는듯 했다

부디 지하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성체조배실로 오르는 길에는 " 십자가의 길 14처 "를 마련 해 두었다

이제 갈매못순교성지를 떠나게 된다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나는 기도하게 된다  안내문에 있는 기도문을 ......

 

"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쇼서  "

 

나는 이곳 외에 배론성지, 솔뫼성지, 그리고 해미읍성, 공세리성당, 전동성당을 보았었다

모두가 종교 전파를 위해 이 땅에 발을 딛은 서양인들과 교인들을 처단한 현장이며

순교하신 그 분들을 기리는곳이다

하나같이 느낀점은 당시 서양의 신부님들이 종교 전파를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적부터 박해하지 않고,

문호를 개방하였다면 근세기에 일본강점기도 없었을것이고,

남북이 분단 되지도 않았을것 아닌가

우리는 언제 정치가  선진화  될련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