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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기/충청

[ 공주여행 ] 무령왕릉과 송산리고분군

 

 

 

* 대문사진 :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

 

 

 

 

청명한 날씨는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든다

가을이 어느새 우리 앞에 다가 옴을 느끼게도 한다

조석으로는 제법 서늘하기도 하다

예년에 없는 무더위도 계절의 변화에는 어쩔수 없는듯 하다

하늘은 더할나위 없이 높고 푸르며 코스모스는 미세한 바람에도 하늘거리게 된다

그러기에 가을을 느끼 볼양으로 집을 나서게 된다 

일전에  푸른하늘님과  모실님이 포스팅 해 주신 공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그리고 국립공주박물관을 가게 된다           ( 2015. 9. 17 ) 

 

 

공주송산리고분군(公州宋山里古墳群, 사적제13호)

 

송산리 고분군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현재 행정구역명은 웅진동)에 위치한 백제의 왕릉들로 추정되는 고분들로

현재 1,2,3,4,5,6,7호 분이 복원이 되어 있다.

이중 7호분은 무령왕릉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총 8개의 유적지들 중 공주지역에 2곳(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부여 4곳(관북리 유적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익산2곳(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가 세계 유산 등재 심사를 최종 통과했다.

이번 세계 유산 등재는 충청권에서는 최초로 선정 되었다

( 위키백과에서 )

 

 

 

 

 

우리의 소중한 유적지가 유네스코에 선정 됨에 영광스럽고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래서 못본 송산리고분군을 보고 싶었던것이다

공산성,부소산성, 정림사지는 보았지만 나머지는 조만간 봐야지하고 다짐 해 본다 

 

먼저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부터 들어서게  된다

 

 

 

 

송산리4호분 내부이다

 

1 ~ 4호분은 백제의 굴식 돌방무덤으로 1927년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이전에 이미 도굴된 것이었다.

조사 당시 동서방향으로 5기의 고분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는 4기만 복원되어 있다.

벽돌로 쌓은 묘실은 가로 세로의 크기가 거의 같은 정사각형의 형태이며,

남벽의 우측에 묘실로 들어가는 통로인 널길이 달려있다.

벽면과 천장에는 백회를 발랐으며, 바닥에는 자갈을 깔았다.

조서 당시에 금제와 은제, 그리고 금동제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 위키백과에서 )

 

 

 

 

 

 

 

 

 

 

 

송산리5호분 내부 모습이다

 

5호분은 1932년 우연히 발견되어 조사되었는데, 1~4호분과 마찬가지로 굴식 돌방무덤이다.

130cm 높이 까지 벽면을 수직으로 쌓고, 그 위는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아 천정이 돔 형태가 되도록 하였다.

바닥에는 목관을 올려 놓는 관대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조사 전에 도굴되어 토기 1점과 약간의 장신구, 그리고 관못 등이 남아 있었다.

 백제의 왕이나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위키백과에서 )

 

 

 

 

고분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고분군중에 가장 중요하고 많은 유물이 출토된 송산리7호분 무령왕릉 모형전시관에 들어선다

 

무령왕릉(武寧王陵)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 가운데 7번째로 발견된 고분으로,

백제 무령왕과 그 왕비의 능이다. 1971년 7월 7일 처음 발굴되었다.

지석이 발견되어 축조연대를 분명히 제시해주었기 때문에 삼국 시대 고고학 편년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고 있으며,

국보로 지정된 금제관식, 금제뒤꽂이, 금제 심엽형이식(귀걸이), 지석, 석수, 청동신수경 등을 포함하여

총 2900여 점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국립공주박물관이 대부분 보관하고 있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은 사적 13호로 지정되어 있다.

( 위키백과에서 )

 

 

무령왕 (武寧王)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사마(斯摩), 혹은 융(隆)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501년 동성왕의 뒤를 이어 무령왕이 즉위 하였다

그의 나이 40세, 늦은 나이였지만 즉위 직후 반란 세력을 진압하여 혼란했던

정국을 수습하고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력을 강화하였다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농업을 발전시켜 경제를 든든히 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속해 한강 일부를 수복하였다

강대국 이였던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영동대장군의 작호를 받았고

이웃한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백제는 무령왕의 강력한 통치를 바탕으로 왕권국가를 재건하는데 성공하여

스스로 " 여러 차례 고구려를 격파하고 다시 강대국이 되었다 " 라고 선언 하였다 

501년에 왕에 즉위하고 523년 62세 나이로 사망하였다 

 

 

웅진시대연표

475년  문주왕 웅진천도

477년  삼근왕 즉위    

479년  동성왕 즉위    

 501년  무령왕 즉위     

523년  성왕  즉위     

538년  사비성천도     

 

 

 

 

 

무령왕릉에 출토 된 유물들

국보급을 포함해 많은 유물이 나왔다 

대부분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되어있다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국보162호)

 

 

 

 

 

 

 

 

 

 

관장식과 귀걸이등

( 국립공주박물관편에서 자세히 포스팅 함 )

 

 

 

 

무령왕릉의 모형 (입구)

 

 

 

 

무령왕릉 내부(모형)

 

 

 

 

송산리고분군모형전시관을 나와 고분군으로 가게 된다

 

 

 

 

고분군은 6호분부터 보게 된다

그러나 내부는 못 들어가게 된다

이미 모형전시관에서 봤기에 내부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막아 두었다

 

 

 

 

 

 

 

 

 

 

고분은 6호분과 5호분을 거치게 된다

이제 7호분 무령왕릉 앞을 지나게 된다

 

 

 

 

 

 

 

 

 

 

 

 

 

 

 

6호, 5호, 7호인 무령왕릉을 지나 조금 오르니

1~4호 고분군이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내부를 보았으면 하지만 문화재 관리 차원에서 비공개로

해 두었으니 모형전시관을 봄으로써 충분히 이해가 된다

 

 

 

 

 

 

 

 

 

 

멀지 않는곳에 공산성이 보인다

공산성의 금서루와 비석군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가 모두를 보고 내려가는데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고분군을 탕방하려 온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유적지를 올바르게 잘 알아야하기에 .....

 

 

 

 

송산리고분군을 잘 보게 되었다

웅진백제문화를 또 역사를 잘 보여주는 고분군 더군다나 유네스코에

등재 되었기에 더욱 우리의 문화재를 소중히 여기고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 국립공주박물관 " 으로 걸음을 옮겨

더욱 상세히 백제 그 중에 웅진시대의 백제를 알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