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都三絶 중에 花潭 徐敬德님을 崇拜 하다
송도 삼절이라 함은 화담과 黃眞伊 그리고 朴淵瀑布를 말한다
그 중에 난 화담 서경덕님을 숭배 한다
박연폭포는 자연이라 그렇고 인간인 서경덕과 황진이 와의 일화와 내가 서경덕님을
존경하는 이유를 때마쳐 어머님의 忌日 14주년을 맞아 어릴적 제게 알려주신 달성 가문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나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향년 86세의 수를 다하시고 1995. 음 3월 27일에 운명을 달리 하셨다
서울에서 출상하여 고향의 선영하에 아버님의 유택인 곳으로 墓를 쓰게 되었다
그 해도 지금과 같이 온 산야는 푸르름이 신록으로 변해 있었고 산에는 산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어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계절에 영면 하셨으나
해마다 이때쯤 되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애절하여 눈물을 삼키곤 한다
내가 어릴적 초등학교 시절에 어머님은 내게 우리 가문에 시집을 오게된 동기를 말씀 해 주셨다
어머님의 혼사 때만 해도 양가 부모들이 혼약을 정해 두고 정혼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부모님이 정한데로
막연하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데 그래도 평생을 살 사람이요 지아비인데 궁금하여
외조부와 외조모님이 얘기 하는것을 엿 들었다고 한다
" 신랑 하나는 똘똘하고 야무지게 생겼지
가문이 우리 昌寧 成家는 達城 徐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3대를 정승하고, 3대를 대제학 한 가문은 서씨 뿐이고
그 후손이니 양반중에 양반이지 "
이런 이야기만 듣고 시집 왔는데 와 보니 먹을 양식 없고 논밭 하나 반반 한것 없었으며
식구는 시부모에 시누이 셋과 ...... 그래서 친정에 가 있는적도 많았다
그래서 초년에는 고생도 많이 하셨고 예전 사람이라 부부애도 그렇게 특별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님이 일찍 세상을 버리시니 제일 슬퍼하시고 못내 못 잊어하시는 분은 어머님이고
옛말에 " 효도 자식보다 악한 처가 낳다 " 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조상이, 가문이 양반이고 외조부께서 가문만 보고 금지옥엽 부유하게 자란 딸을
흔쾌히 혼사를 정한 이유를 알기위해 達城의 族譜에 대해 서적을 들추어 보았다
그리고 달성이 배출한 인재도 알아보고 .......
그런 가운데 비록 本貫은 다르나 가장 존경스럽고 위대한 분을 꼽는다면 화담 서경덕님이라 할 수 있다
花潭 徐敬德 ( 1489 ~ 1546 ) 은 조선 중종 14년에 사마시에 급제했고 생원시에도 장원 급제까지
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일생을 處士로써 지냈다
만물의 이치를 이해하고자 理氣說을 주장하는 철학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주기론은
대학자 李珥에게 영향을 주어 이기설을 완성케 했다
당시 黃眞伊는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名妓로써 시조, 가곡, 가야금 연주 등 출중했다
이미 알려진바로 황진이와 화담과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황진이는 자신이 뜻하여 굴복 시키지 않은 남자는 없다고 하여 각계의 유명인사에게
접근을 시도하였다
한번은 30년이나 수도하여 살아있는 부처라고 하는 知足禪師를 만나 한적한 절에서
자신을 위해 불공을 드려달라고 청하여 그에 응한 지족선사는 목탁을 두드리며 불공을 드리는데
이에 황진이는 그 옆자리에서 농염한 자태를 보이고 끝내는 속살을 드러내어
유혹하니 불공을 드리던 지족선사가 결국은 황진이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안고 한 몸이 되니....
그것으로 파계승이 되어 30년 수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황진이는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이번에는 당대에 최고의 학자인 화담을 찾아가
갖은 교태를 화담에게 보이고 석달 열흘이나 유혹하였으나 끝내 현혹되지 않고 단지
시를 같이 읊고 문학을 논하는 논객으로 맞아주니 비로소 황진이는 큰절을 하고는
제자로 삼아달라고 하며 무릎을 굻고 애원 했드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런 후에 화담과 황진이는 스승과 제자로써의 남달은 친분이 두터워서 오늘날 까지
서로 주고 받은 詩가 전해온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 한다
마음이 어린 휘니 하는일이 다 어리다
萬重雲山에 어느님 오리요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ㅡ 화담에게 글을 배우러 오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지은 노래
깨끗한 애정으로 승화시킨점 화담의 인격을 더욱 돋보이게 한 詩 ㅡ
내 언제 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月沈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오
ㅡ 비록 스승과 제자지만 이성으로써 애정이 어찌 없을손가 그래서 이런 노래가 오 갔지만
그것은 순수한 애정으로 승화 시킨데에 화담의 고매한 인품, 덕성을
또한 황진이의 총명함을 엿 볼 수 있다 ㅡ
또 한편 이러한 시도 오 갔다
吾心旣云醉 : 내 마음 이미 어리 석으니
事事皆成痴 : 일마다 모두 치졸 하구나
月沈到三更 : 달도 진 깊은 밤인데
豈是人來時 : 어찌 그리운 이 오시랴
風鳴葉落聲 : 지는 잎 바람 소리에
猶復浪驚疑 : 행여나 오는가 놀래노라
이에 황진이는 다음과 같이 화답을 했다고 한다
何曾妾無信 : 언제 소첩이 신의가 없어
乃與君相欺 : 이내 그대를 속였다 하시나요
深夜遠來意 : 깊은밤 멀리서 온 뜻을
而君諒不知 : 당신은 진정 모르시나요
鳴風落葉本無情 : 우는 바람 지는 잎이 무정하여
渠自爲聲妾何爲 : 절로 소리 낸걸 제가 어이 하나요
이와 같이 화담과 황진이는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면서 에로스 적인 사랑이 아닌
아가페 적인 사랑을 나누면서 송도의 삼절로 늘리 알려져 있다
나는 이런 멋지고 주관이 확실하고 학자이신 화담의 인생관을 닮고 싶다
벼슬을 하지않고 후학을 양성하며 자연을 벗 삼아 곧은 절개를 간직한 체
뭇 사람에게 숭배 받는 화담 서경덕 님이야 말로 위대하고 고매한 인격자요 학자이시다
요즈음 같이 돈이 인생에 전부인양 안하무인 격인 물질 만능시대에
이런 숭고한 정신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 아쉬운 시대이다
나는 어머님이 외조부의 의향데로 시집오셔서 출가전의 생활과는 너무나 차이가 많은
우리 徐門에 오셔서 갖은 고생을 감내하시고 자식을 잘 키워 주심에
무엇으로 모친의 은혜에 답하리요
어머님 忌日을 맞아 다시 한번 명복을 빌며, 화담 서경덕님의 삶을 높이 숭배하고
나도 남은 인생을 그렇게 살도록 노력 하겠다고 다짐 해 본다
어머님의 기일 14주년을 맞이 하면서
2009. 음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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