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선생과 두향과의 사랑
동서고금을 통하여 " 사랑 " 만큼이나 고귀하고, 회자 ( 膾炙 ) 하는 낱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살아가는데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것이고, 고결한 것이다
그러기에 문학인들은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 연극을
가장 많이 다루었고, 다루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룰것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사랑 얘기로 인해 울고, 웃고, 즐기며 때로는 대리만족을 느끼곤한다.
예를들면,
국경을 초월하여 백제의 서동 (후에 무왕이 됨)과 신라의 선화공주 얘기며,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은 우리나라 사랑 테마의 근본을 이루었고,
김소월은 " 진달래 꽃 " 에서 서러운 사랑의 이별을 시로 표현 했으며,
황진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랑을 이루지못해 결국은 기생으로 전락 되었고,
베르테르는 로테를 그토록 사랑하지만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고,
" 로미오" 는 윈수지간인 가문 때문에 결국 죽음으로 " 줄리엣 " 과 함께 했으며,
" Erich Segal " 의 " Love Story " 역시, 제니를 보내는 올리버는 제니가 남긴 한마디를
"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 " ㅡ 사랑이란 결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ㅡ 말을 되새기게 되며,
" 사랑과 영혼 " 에서 몰리는 영혼이나마 샘과 해후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러서 온 관객의 눈시울을
젖게했고,
" 러브 레터 " 의 히로코는 사랑하는 이츠끼가 등반사고로 죽은 산 아래에 가서
" 오겡끼 데쓰까? " ㅡ 잘 지내시나요? ㅡ 하고 절규하다 끝내 오열하는.........
이 모두가 애절하고도 환희에 찬 사랑이란 주제를 가지고 독자에게 깊이 각인 시킨 불후의
명작이다.
나는 근간에 꽁꽁 얼어 붙은 강가를, 때론 담수호를 보면서 산다래 산악회에 가입하여
처음으로 갔었던 제비봉 산행시에 충주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단양팔경을 구경하며
두향 ( 杜香 ) 의 묘를 본 적이 불현 듯 생각이 올라 2 년 전에 읽어 감명 받은
" 최인호 " 작가가 쓴 " 儒林 " 이란 소설을 재독 하게 되었다
역시 명작이고 특히나 퇴계 이황선생과 관기 두향과의 사랑 이야기는 압권이였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은 30세나 아래인 관기 두향과의 로맨스를 즐기게 된다
공자의 유교 사상을 이황이 완성 시킨 조선 최대의 성리학자 지만 그래도 남녀간의 상사지곡은
없을수 없는법,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강선대에서 밤이 깊도록 두향은 거문고을 뜯게되고 퇴계는
노래를 , 시를 읊으면서 사랑은 깊어가나 9 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발령 받게되니 결국은 이별을 하게되고
너무나 서러운 이별인지라 퇴계는 두향의 속 치마폭에 별시를 남기게 된다
『 死別己呑聲 生別常惻惻 』
ㅡ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 없더라 ㅡ
결국 이별하게되고 두향은 그길로 관기 생활도 그만두고 칩거 생활에 들어가게되고....
퇴계는 풍기군수 후 낙향하여 고향인 안동의 도산서당에서 후학에, 학문에 열중 했는데
비록 헤여졌으나 못내 못 잊어 두향은 종자 ( 從者 ) 여삼에게 평소에 퇴계가 좋아하는 매분 ( 梅盆 )
하나를 보내게 되고 퇴계는 종자에게 우물 ㅡ열정ㅡ 에서 길러온 그것도 아무도 안 들린 이른 새벽에
몸소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정화수 한동이를 두향에게 보내게 된다
두향은 20년 동안 속 치마폭에 퇴계선생이 써준 별시를 들여다보고 어루만졌던것이 아닌가
ㅡ 사별기탄성 생별상측측 ㅡ 마치 살아있는 나으리의 육신을 대하듯 열자에 불과한 그 문장을 들여다보고
또 들어다 보곤하였다
두향은 즉흥시로 다음과 같이 읊프면서 나으리를 그리워 했으니....
"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오리
무심히 거울드니 얼굴만 야윗고야
백년을 못 사는 우리 인생
이별 만이 더욱 서러워라 "
방안으로 스며든 월색은 더욱 교교 해져서 굳이 촛불을 밝힐 필요가 없었다
두향이가 보낸 치마폭에 정화수와 함께 20년 만에 나으리께서 또 다시 詩 한 수를 적어 주셨다
『 相看一笑天應許,
有待不來春欲去 』
ㅡ 서로보고 한 번 웃는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ㅡ
두향은 치마폭에 새로 선 완성된 전별시로 생각하고 보내온 정화수를
" 어떻게 마셔 없애 버릴수 있겠는가. 이물은 오직 나으리를 위한 정안수로만 사용 할것이다 "
천지 신명께 나으리를 위해 비는 淨化水로만 사용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날밤, 두향은 강선대에 나아가 얼음장같이 차디찬 강물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몸을 씻고 언젠가는 이 강물이 자신의 육신을 집어삼킬 인당수라는 예감을 느낀다
목욕 재게한후 사기 주발을 장독대 위에 정한수 한 그릇을 올려놓고 치성을 드렸다
"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신지기께 비나이다 일월성신께 비나이다
소첩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나으리께 무병장수 하시기를 비나이다
행여 나으리께서 연세종명 ( 捐世終命 ) 하시거들랑 이 소첩도 한 날 한 시에 숨을 거둘수 있도록
사원무위 (使願無違 ) 하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
그 날부터 시작된 정안수의 致誠은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퇴계가 죽는날까지 2 년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되었다고 한다
선조 3년 1570년 12월 8일 유시 (酉時)에 퇴계 이황은 숨을 거둔다
바로 그 순간 두향의 부엌 한구석에 보관된 정화수가 갑자기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본 두향은 나으리께서 분명 변고가 있다하여 단양에서 안동까지 2 백 여 리의 험난한 산길 죽령을 넘어
나흘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토계리에 도착해 보니 나으리는 예상되로 연세종명 하셨다는 것을 알게된다
두향은 " 나를 낳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사랑하여 인간으로서의 깨닫음을 얻게하고, 나를 알아주고, 가르치고
사랑한 사람은 나으리 인것이다 "
지체 낮은 기생의 신분으로 서당 안으로 들어가서 문상을 하지 못하고
도산서당을 향해 밤을 새며 望哭을 하였다
두향은 단양으로 다시 돌아와 퇴계와 이별 한 후 단 한번도 손에 들지 않았던 거문고를 들고는
생전에 퇴계가 각별히 좋아했는 "시경 "에 나오는 < 고반 (考槃) > 이란 시를 뜯는것이다
이 노래는 퇴계가 단양군수로 있을적에 강선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듣던 애창곡이다
『 즐겁도다 물가에 숨어사는 삶은
큰 사람의 유연한 모습 일러라
홀로 잠 자고 홀로 밤을 새니
그 즐거움 남에게 알려 무엇하리 』
모든것을 정리한 두향은 퇴계가 생전에 써 주었던 전별시가 적힌 치마를 입고
강선대 위에서 잠시 타오르는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으리의 시를
소리내어 읊고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바위 아래로 떨어져 강물 속으로 내려 곶히게 함으로써
삶을 마감한다
두향은 " 남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강선대 위에 묻어 주십시오 " 라는 짧은 유서 한장을 남긴채........
ㅡ 최인호의 유림 중에서 ㅡ
온 세상을 뿌연 안개로 뒤 덮고 있는 오후에, 나는 <유림>의 책을 통하여
사랑이란 정말 놀라운 힘이 있고 인생에 살아감에 가장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되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충주호에 유람선을 타고는 두향의 묘를 참배 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ㅡ 2009. 2. 5. 오 후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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