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妓 生 李 梅 窓 은 누구인가 ? **
내 블로그에 왜 기생 이야기가 많이 있느냐 ?
퇴계 이황선생과의 로맨스를 그린 杜 香 며, 黃 眞 伊, 그리고 金 芙 蓉 에 대해 소개 된바 있다
오늘은 부안의 기생 이매창에 대해 글을 자료를 찾은데로 알고 있는 범위에서 올리려고 한다
왜 ? 기생에 대해 글을 쓰고 그들을 흠모 하는냐 하면 이 글을 모두 읽은 분들은 이해가 가리라 짐작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분이 自意든, 他意든 기생으로 천한 신분을 가졌지만
그래도 인품, 재능, 정절이나 우리가 알고있는 기생과는 다르다
쉽게 정을 주고 쉽게 몸을 더럽히고 그러질 않았으며 특히나 詩文에 능통하고 풍류를 즐기고 한 남자에 대한
정절이 너무나 깊다는것에 나는 그 분들이 비록 기생이지만 존경 스러운것이다.
李梅窓 (1573~1610) !! 본명은 李香今이며 호는 梅窓 또는 桂生으로 조선시대의 황진이, 김부용과 함께
3대 기녀 중에 한사람이다
조선 선조때의 기생이며 여류 시인인 이매창은 1573년에 당시 부안 현리였던 李陽從 (혹은 李湯從이라고도 함)
의 庶女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 이었기에 癸生, 또는 癸娘이라고한다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웠으며 시문과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는데
어릴적부터 시 짓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주위 사람들을 곧 잘 놀라게 했다
또한 노래, 거문고에 이르기 까지 모두 잘 하였을 뿐 아니라 몸가짐과 언행이 매우 단정한 기녀였다
부안의 名妓로 한시 70여수와 시조 한 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시와 가무에도 능 했을뿐 아니라 특히 정절의 여인으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그러한 이매창에게도 사랑하는 이가 있었으니 1590년 무렵 부안을 찾아온 시인 村隱 劉希 慶을 만나게된다
매창은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하다
매창이 죽을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바쳐 사랑한 남자는 「 촌은 유희경 」 한 사람 뿐이었다
매창이 촌은을 처음 만난것은 임진왜란 나기전 1590년으로 추정되며
당시 매창은 18세 촌은은 28세 연상인 46세
비록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다재다능하며 심지가 굳은 매창으로 하여금 첫눈에 반한 촌은
그 역시 천인이였고 그러나 중앙 문단에서는 알아주는 유희경이었다
매창과 촌은 두사람의 정은 갈수록 깊어져 갔다
하지만 촌은은 한양에 처자식이 있는지라 유부남과 독신녀의 사랑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
매창은 그렇게 깊은 정을 주고 떠난 촌은을 그리워 할수 밖에 없었고
그 심정을 " 이화우 " 라는 유명한 시로 표현 하게된다
< 이 화 우 >
이화우 흩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 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매창을 두고 한양에 온 촌은은 매창을 그리워 하며 시를 읊게되니
< 매창을 생각하며 >
娘家在浪州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 나의 집은 서울에 있다
相思不相見 그리움이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洞雨 오동나무에 비 뿌릴제 애가 끊겨라
매창과 촌은의 사랑은 더욱 더 애절하니 매창집에 이런 시가 있다
< 閨 怨 : 임 생 각 >
相思都在不言裡 애 끓는 정 말고는 할길이 없어
一夜心懷빈半絲 밤새워 머리칼이 반 남아 세웠고나 * 귀밑털 빈 자인데 컴에 없네요
欲知是妾相思苦 생각는 정 그래도 알고프거든
須試金環減舊圓 가락지도 안 맞는 여윈손 보소
1607년 유희경을 다시 만난 기록이 있지만 매창은 그와 헤어진 뒤 10 여년을 마음의 정을 주는
사람이 없이 유희경을 그리며 살았다
매창의 다른 시 한수를 또 소개하면
< 贈 醉 客 : 취하신 님께 >
醉客執羅衫 취하신 손님이 명주 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羅衫隨手裂 손길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며 찟어졌군요
不惜一羅衫 명주 저고리 하나 쯤이야 아까울께 없지만
但恐思情絶 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찟어 졌을까 그게 두려워요
매창은 결국 짧은 생을 마감 하게된다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 許筠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게 된다
妙句堪擒錦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듯하고
淸歌解駐雲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兪桃來下界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盜藥去人群 불사약을 훔처서 인간무리를 두고 떠났네
燈暗芙蓉帳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香殘翡翠裙 비취색 치마엔 향내가 아직 남아 있는데
明年小挑發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때 쯤이면
誰過薛濤墳 그 누구가 설도의 무덤 곁을 지나려나
후세에 이르서는 이매창을 생각하며 가람 李秉岐는 다음과 같이 추모 시를 읊게된다
『 梅 窓 뜸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 없이 비와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는 않는다
梨花雨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그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듯 하구나
羅衫裳 손에 잡혀 몇 번이나 찢었으니
그리던 雲雨도 스러진 꿈이 되고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말 살아 남았구려 』
이제 끝을 맺자
변산반도의 시작은 부안이다
변산반도의 여행은 월명암에 반드시 올라야 변산 여행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부안에 가면 반드시 매창공원에 들려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천재시인 이며 한 사람을 위해 순수한 사랑을
한 이매창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릴것이다
ㅡ 무더운 초여름에 기생 이매창을 생각하며 ㅡ
( 2009. 6.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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