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월/봉화/영주여행기 2 - 단종대왕이 묻혀있는 장릉에 들려 참배하게 된다 "
( 2017. 10. 30. 월 )
청령포를 떠나면서 마음은 내내 울고 있었다
단종어소에 만들어 둔 밀랍인형인 단종이지만 우러러 보면서 눈시울을 붉게 했고
고개 숙여 하직 인사를 하고는 나룻배를 타고 청령포를 떠나야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이제 단종이 묻혀있는 장릉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장릉(莊陵, 사적제196호)
장릉은 조선왕조 제6대 단종(端宗:1441~1457)이 안장 되어있는 능이다
부왕인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승하하자 그 뒤를 이어 12세의 어린 나이로 1452년 왕으로 즉위하였다
단종1년(1453)에 숙부 수양대군은 정인지, 한명회등과 결탁하여 황보 인, 김종서을 척살하고 국권을
장악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단종3년(1455) 수양 일파의 음모와 위협으로 왕위를 수양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세조2년(1456) 단종을 복위하려는 사육신 사건이 발각되어 이 사건으로 이듬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폐 되었다
그 해(1457) 가을 금성대군 유(瑜)가 중심이 되어 단종 복위 사건이 다시 일어나자
단종은 서인으로 폐하고 사약을 내려 10월24일 17세 일기로 최후를 마쳤다
단종이 죽자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는데 영월호장(寧越戶長) 嚴興道가 관을 준비하여
남몰래 지금의 능이 있는 동을지산(冬乙旨山) 에 암매장 하였다
단종이 돌아 가신후 224년 만인 숙종7년(1681)에 대군으로 추봉 되었으며
마침내 숙종24년(1698)에는 복위 되어 묘호(廟號)를 단종(端宗)이라하여
종묘에 부묘하고 능을 장릉이라 하였다
(안내문)
청령포에서 가까히 위치해 있는 장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평일임에도 관람객은 많이 보인다
단풍은 가을빛이 잘 내리니 더욱 밝게 보인다
능으로 가는 길목에는 엄흥도의 정여각이 있었다
엄흥도정여각(嚴興道旌閭閣)
이 비각은 엄흥도의 忠節을 후세에 알리기 위하여 영조2년(1726)에 세운것이다
충신 엄흥도가 영월호장으로 있을때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어
觀風軒에서 1457년10월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장하여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순조33년(1833)에 공조판서로 추증되었고 고종13년(1876)에 충의공이란 시호를 받았다
(안내문)
능으로 오르는 길은 소나무로 우거져 있었고 소나무 가지는 하나같이 능으로 향해 있었다
능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한 동안 참배의 예를 갖추게 된다
응당 4배를 해야하는데 묵념만 하게 된다
다시 한번 단종의 억울함과 비통함에 애잔한 맘 가눌길 없었다
참배후에 아래로 내려간다
먼저 장판옥을 보게 된다 수많은 위패가 특이했다
장판옥(藏版屋)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여러 신하들을 장릉에 배향하기 위하여
正祖15년(1791) 왕명으로 장릉 밑에 충신단을 설치하고 정단에는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뀐 충신위 32인,
조사위(朝士位)186인, 환자군노(宦者軍位)44인, 여인위(女人位)6인을 합하여 268인의 위폐를 모셔 놓았다
장판옥 맞은편에는 배식단이 있었다
배식단(配食壇)
이곳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 조사위, 환자군노위, 여인위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제향과 함께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자각(丁字閣)
이 건물은 숙종25년(1699)에 건립 하였으며 단종대왕 재향시 제를 올리는곳이다
단종비각(端宗碑閣)
영조9년(1733)에 어명으로 단종대왕릉비와 비각이 건립 되었다
비석 앞면에는 <조선국단종대왕장릉(朝鮮國端宗大王莊陵)>이라는 글이 음각 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단종대왕의 생애가 기록 되어있다
재실(齋室)
이 건물의 처음 연대는 숙종25년(1699)이고 1932년에 중건하였다
단종제향을 지낼때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기구를 보관해 오던곳이다
재실을 나와 단종역사관을 관람하게 된다
단종역사관을 관람하면서 다시 애잔한 마음이 내내 갖게 된다
박충원낙촌비각
이 비각은 박충원의 충신 됨을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하여 1973년에 세운것이다
중종11년(1516) 노산묘를 찾으라는 어명에 의하여 찾아 치제 하였으나
그 후 방치 되었던 묘를 중종36년(1541) 영월군수로 부임한 박충원의 현몽에 의해 봉축(封築)하고
전물(奠物)을 갖추고 제문을 지어 치제하였다
이제 장릉을 뒤로 하게 된다
장릉에 들려 단종묘에 참배를 한 후에 능을 고루 보았지만
단종이 왕위를 찬탈 당하고 恨스런 유폐생활과 賜死한것이 나의 뇌리에 늘 남아있어
애통하면서도 한편 수양에 대한 원망이 떠나질 않았다
청령포와 장릉을 뒤로 하고 선돌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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